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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니아스 · 그리스 안내기 §8.5.1-8.5.7

에케모스에서 큅셀로스에 이르는 아르카디아의 여러 왕

465개 구절 중 305번째 · 그리스어

요약

에케모스로부터 아가페노르, 히포토오스, 아이피투스, 큅셀로스, 홀라이아스에 이르는 아르카디아의 역대 왕들의 가계와 도리아인의 침공, 키프로스 이주, 도시 이름 변경 등의 사건을 기술한다.

§8.5.1Λυκούργου δὲ ἀποθανόντος Ἔχεμος ὁ Ἀερόπου τοῦ Κηφέως τοῦ Ἀλέου τὴν Ἀρκάδων ἔσχεν ἀρχήν.
리쿠르고스가 죽자, 알레오스의 아들 케페우스의 아들 아에로포스의 아들 에케모스가 아르카디아인들의 지배권을 차지했다.
ἐπὶ τούτου Δωριεῖς κατιόντας ἐς Πελοπόννησον ὑπὸ ἡγεμόνι Ὕλλῳ τῷ Ἡρακλέους Ἀχαιοὶ περὶ ἰσθμὸν τὸν Κορινθίων κρατοῦσι μάχῃ, καὶ Ἔχεμος ἀποκτίννυσιν Ὕλλον μονομαχήσαντά οἱ κατὰ πρόκλησιν.
그의 시기에, 헤라클레스의 아들 힐루스의 지도 아래 펠로폰네소스로 내려오던 도리아인들을 아카이아인들이 코린토스 지협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격파했고, 에케모스는 도전에 따라 자신과 일대일로 결투를 벌인 힐루스를 죽였다.
τάδε γὰρ ἐφαίνετο εἰκότα εἶναί μοι μᾶλλον ἢ ὁ πρότερος λόγος, ἐν ᾧ βασιλεύειν τε Ἀχαιῶν τηνικαῦτα Ὀρέστην ἔγραψα καὶ Ὕλλον Ὀρέστου βασιλεύοντος ἀποπειρᾶσαι καθόδου τῆς ἐς Πελοπόννησον.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이전에 아카이아인들을 당시 오레스테스가 다스리고 있었고 오레스테스의 치세 중에 힐루스가 펠로폰네소스로의 귀환을 시도했다고 썼던 예전의 설명보다 내게는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φαίνοιτο δʼ ἂν τῷ ὑστέρῳ τῶν λόγων καὶ Τιμάνδρα συνοικήσασα ἡ Τυνδάρεω τῷ ἀποκτείναντι Ὕλλον Ἐχέμῳ.
또한 이 나중의 설명에 따르면, 틴다레오스의 딸 티만드라가 힐루스를 죽인 에케모스소와 혼인하여 함께 살았다는 점도 들어맞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8.5.2Ἀγαπήνωρ δὲ ὁ Ἀγκαίου τοῦ Λυκούργου μετὰ Ἔχεμον βασιλεύσας ἐς Τροίαν ἡγήσατο Ἀρκάσιν.
에케모스 다음으로 왕이 된, 리쿠르고스의 아들 안카이오스의 아들 아가페노르는 아르카디아인들을 이끌고 트로이아로 향했다.
Ἰλίου δὲ ἁλούσης ὁ τοῖς Ἕλλησι κατὰ τὸν πλοῦν τὸν οἴκαδε ἐπιγενόμενος χειμὼν Ἀγαπήνορα καὶ τὸ Ἀρκάδων ναυτικὸν κατήνεγκεν ἐς Κύπρον, καὶ Πάφου τε Ἀγαπήνωρ ἐγένετο οἰκιστὴς καὶ τῆς Ἀφροδίτης κατεσκευάσατο ἐν Παλαιπάφῳ τὸ ἱερόν·
일리온이 함락되었을 때, 그리스인들의 귀환 항해 중에 불어닥친 폭풍이 아가페노르와 아르카디아의 함대를 키프로스로 몰고 갔고, 아가페노르는 파포스의 건설자가 되었으며 팔라이파포스에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건립했다.
τέως δὲ ἡ θεὸς παρὰ Κυπρίων τιμὰς εἶχεν ἐν Γολγοῖς καλουμένῳ χωρίῳ.
그전까지 이 여신은 키프로스인들에게 골고이라 불리는 곳에서 숭배를 받고 있었다.
§8.5.3χρόνῳ δὲ ὕστερον Λαοδίκη γεγονυῖα ἀπὸ Ἀγαπήνορος ἔπεμψεν ἐς Τεγέαν τῇ Ἀθηνᾷ τῇ Ἀλέᾳ πέπλον·
훗날 아가페노르의 후손인 라오디케가 테게아의 아테나 알레아에게 페플로스를 보냈다.
τὸ δὲ ἐπὶ τῷ ἀναθήματι ἐπίγραμμα καὶ αὐτῆς Λαοδίκης ἅμα ἐδήλου τὸ γένος·
그 봉헌물에 새겨진 비문은 라오디케 자신의 혈통도 함께 밝히고 있었다.
" Λαοδίκης ὅδε πέπλος·
"이것은 라오디케의 페플로스.
ἑᾷ δʼ ἀνέθηκεν Ἀθηνᾷ πατρίδʼ ἐς εὐρύχορον Κύπρου ἀπὸ ζαθέας. " Ἀγαπήνορος δὲ οὐκ ἀνασωθέντος οἴκαδε ἐξ Ἰλίου, §8.5.4παρέλαβε τὴν ἀρχὴν Ἱππόθους Κερκυόνος τοῦ Ἀγαμήδους τοῦ Στυμφήλου.
그녀가 성스러운 키프로스로부터 넓은 고향 땅에 있는 자신의 아테나에게 바쳤노라." 아가페노르가 일리온에서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으므로, 스팀팔로스의 아들 아가메데스의 아들 케르키온의 아들 히포토오스가 지배권을 이어받았다.
καὶ τῷ μὲν ἐπιφανὲς συμβῆναι παρὰ τὸν βίον φασὶν οὐδέν, πλὴν ὅσον οὐκ ἐν Τεγέᾳ τὴν βασιλείαν κατεστήσατο ἀλλὰ ἐν Τραπεζοῦντι·
그에게는 왕궁을 테게아가 아닌 트라페주스에 세웠다는 것 외에는 일생 동안 이렇다 할 뛰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Αἴπυτος δὲ ὁ Ἱππόθου μετὰ τὸν πατέρα ἔσχε τὴν ἀρχήν, καὶ Ὀρέστης ὁ Ἀγαμέμνονος κατὰ μαντείαν τοῦ ἐν Δελφοῖς Ἀπόλλωνος μετῴκησεν ἐς Ἀρκαδίαν ἐκ Μυκηνῶν.
히포토오스의 아들 아이피투스가 아버지를 이어 지배권을 얻었고,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델포이의 아폴론의 신탁에 따라 미케네를 떠나 아르카디아로 이주했다.
§8.5.5Αἰπύτῳ δὲ τῷ Ἱππόθου παρελθεῖν ἐς τὸ ἱερὸν τοῦ Ποσειδῶνος τὸ ἐν Μαντινείᾳ τολμήσαντι— ἔσοδος δὲ ἀνθρώποις οὔτε τότε ἐς αὐτὸ ἦν οὔτε ἄχρι ἡμῶν ἔστιν—, ἐς τοῦτο ἐσελθόντι τυφλωθῆναι καὶ οὐ μετὰ πολὺ τῆς συμφορᾶς τελευτῆσαί οἱ τὸν βίον ἐγένετο.
히포토오스의 아들 아이피투스가 만티네이아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으로 감히 들어가려다가—그곳은 그때나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곳인데—그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눈이 멀게 되었고, 그 재난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게 되었다.
§8.5.6Κυψέλου δὲ τοῦ Αἰπύτου βασιλεύοντος μετὰ Αἴπυτον, ὁ Δωριέων στόλος οὐ διὰ τοῦ Κορινθίων ἰσθμοῦ, καθὰ ἐπὶ τρεῖς τὰς πρότερον γενεάς, ναυσὶ δὲ κατὰ τὸ ὀνομαζόμενον Ῥίον κάτεισιν ἐς Πελοπόννησον·
아이피투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큅셀로스가 왕으로 다스리고 있을 때, 도리아인의 원정대는 이전 세 세대 동안 시도되었던 것처럼 코린토스 지협을 통하는 대신, 배를 타고 리온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 펠로폰네소스로 내려왔다.
πυνθανόμενός τε τὰ ἐς αὐτοὺς ὁ Κύψελος, ὃν τῶν Ἀριστομάχου παίδων οὐκ ἔχοντά πω γυναῖκα εὕρισκε, τούτῳ τὴν θυγατέρα ἐκδοὺς καὶ οἰκειωσάμενος τὸν Κρεσφόντην αὐτός τε καὶ οἱ Ἀρκάδες ἐκτὸς ἑστήκεσαν δείματος.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들은 큅셀로스는 아리스토마코스의 아들들 중 아직 아내가 없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내어, 그 크레스폰테스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우호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도 아르카디아인들도 공포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다.
§8.5.7Ὁλαίας δὲ ἦν Κυψέλου παῖς, ὃς καὶ τῆς ἀδελφῆς τὸν παῖδα Αἴπυτον, σὺν δὲ αὐτῷ καὶ οἱ ἐκ Λακεδαίμονος καὶ Ἄργους Ἡρακλεῖδαι κατάγουσιν ἐς Μεσσήνην.
홀라이아스는 큅셀로스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누이의 아들인 아이피투스를 라케다이몬과 아르고스에서 온 헤라클레이다이와 함께 메세네로 귀환시켰다.
τοῦ δὲ ἦν Βουκολίων, τοῦ δὲ Φίαλος, ὃς τὸν Λυκάονος Φίγαλον οἰκιστὴν ὄντα ἀφελόμενος τὴν τιμὴν Φιαλίαν τὸ ὄνομα τῇ πόλει μετέθετο ἀφʼ ἑαυτοῦ·
그의 아들은 부콜리온이었고, 부콜리온의 아들은 피알로스였는데, 이 피알로스는 리카온의 아들이자 도시의 건설자였던 피갈로스의 영예를 빼앗아 그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피알리아로 바꾸었다.
οὐ μὴν καὶ ἐς ἅπαν γε ἐξενίκησεν.
그러나 이 이름이 완전히 승리를 거두어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어휘·문법 주석

  1. 8.5.1φαίνοιτο δʼ ἂν ... συνοικήσασα — 동사 `φαίνομαι`가 분사 `συνοικήσασα`와 결합하여 "~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일 것이다" 또는 "~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라는 뜻을 나타낸다(부정사를 동반하여 "~처럼 보이다"라고 하는 것과는 다름). 여격 `τῷ ὑστέρῳ τῶν λόγων`은 판단의 기준을 나타내어, "나중의 설명에 따르면"이라는 의미가 된다.
  2. 8.5.4καὶ τῷ μὲν ἐπιφανὲς συμβῆναι παρὰ τὸν βίον φασὶν οὐδέν — 여격 지시대명사 `τῷ μὲν`은 히포토오스를 가리키며, 비인칭 동사 `συμβῆναι`("~에게 일어나다")의 여격 보어로 기능한다. 부정사절의 주어는 `οὐδέν`이며, 전체 문장은 `φασίν`("사람들은 말한다")의 지배를 받아 "그에게는 일생 동안 눈에 띄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라는 뜻이 된다.
  3. 8.5.6ὃν τῶν Ἀριστομάχου παίδων οὐκ ἔχοντά πω γυναῖκα εὕρισκε, τούτῳ τὴν θυγατέρα ἐκδοὺς — 관계대명사 `ὃν`으로 시작하는 절이 주절 안에 삽입되어 있으며, 그 선행사(크레스폰테스)는 뒤따르는 지시대명사 `τούτῳ`("그에게")에 의해 다시 지칭된다. 관계대명사의 격(대격 `ὃν`)은 관계절 내에서 동사 `εὕρισκε`("발견했다") 및 분사 `ἔχοντά`("가진")의 직접목적어로 기능하기 때문에 대격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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