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8ἦν δὲ καὶ ἄλλος τις λόγος ἐπὶ τῇς ἀκρασίας ὃς παρεῖχεν ἀπορίαν, ὡς ἐπαινετοῦ ποτε τοῦ ἀκρατοῦς ἐσομένου καὶ ψεκτοῦ τοῦ ἐγκρατοῦς.
또한 무자제에 관해 곤란함을 제공하는 또 다른 논변이 있었는데, 언젠가 무자제한 사람은 칭찬받고 자제하는 사람은 비난받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οὐ συμβαίνει δὲ τοῦτο.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οὐ γάρ ἐφπτιν οὔτʼ ἐγκρανὴς οὔτʼ ἀκρατὴς ὁ τῷ λόγῳ διεψευσμένος, ἀλλὰ ὁ λόγον ἔχων ὀρθὸν καὶ τούτῳ τὰ φαῦλα ὄντα κρίνων καὶ τὰ καλά, κσὶ ἀκρατὴς μὲν ὁ τῷ τοιούτῳ λόγω ἀπενθὢν', ἐγκραπτὴς δὲ ὁ πειθόμενος καὶ μὴ ὑπὸ τῶν ἐπιθυμιῶν ἀγόμενος·
왜냐하면 이성에 있어서 속고 있는 사람은 자제하는 사람도 무자제한 사람도 아니며,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이것에 의해 나쁜 것과 아름다운 것을 판별하는 사람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자제한 사람은 그러한 이성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고, 자제하는 사람은 그것에 따르며 욕망에 의해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다.
οὐδὲ γὰρ ᾦ τινι οὐ δοκεῖ τὸν πατέρα τύπτειν αἰσχρὸν εἶναι, ἐπιθυμῶν δὲ τύπτειν, ὁ τούτου ἀπεχόμενος ἐγκρατής ἐστι·
왜냐하면 아버지를 때리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때리기를 열망하되 이로부터 물러서 있는 사람이 자제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6.19στε εἰ μή ἐστιν ἐπὶ τῶν τοιούτων μήτε ἐγκράτεια μήτε ἀκρασία, οὐδʼ ἂν ἔπαινετὴ εἴη ἡ ἀκρασία οὐδὲ ψεκτὴ ἡ ἐγκράτεια, ὥσπτερ ἐδόκει.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에게서는 자제도 무자제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생각되었던 것처럼 무자제가 칭찬받거나 자제가 비난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2.6.20εἰσὶ δὲ τῶν ἀκρασιῶν αἳ μὲν νοσηματικαὶ αἳ δὲ φύσει.
또한 무자제 중에는 어떤 것은 병적인 것이고 어떤 것은 자연에 의한 것이다.
οἷον νοσηματικαὶ μὲν αἱ τοιαῦται·
예컨대 병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εἰσὶ γάρ τινες οἱ τίλλοντες τρίχας διατρώγουσιν.
즉, 머리카락을 뽑아서 씹는 사람들이 있다.
εἰ οὖν τις ταύτης τῆς ἡδονῆς κρατεῖ, οὐκ ἔστιν ἔπαινετός, οὐδὲ ψεκτός, εἰ μὴ κρατεῖ, οὐ σφόδρα γε.
만약 누군가 이러한 쾌락을 억제하더라도 그는 칭찬받지 않으며, 억제하지 못하더라도 그리 심하게 비난받지는 않는다.
φύσει δέ, οἷον υἱόν ποτέ φασ κρινόμενον ἐν δικαστηρίῳ, ὅτι τὸν πατέρα τύπτοι, ἀπολογεῖσθαι λέγονθʼ ὅτι “καὶ γὰρ οὗτος τὸν ἑαυτοῦ πατέρα”, καὶ ἀποφυγεν δή·
그리고 자연에 의한 것은, 예컨대 옛날에 법정에서 아버지를 때린 죄로 재판을 받던 아들이, "왜냐하면 이 사람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때렸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변명했고, 실제로 무죄 방면되었다고 하는 경우와 같다.
δοκεῖν γὰρ τοῖς δικασταῖς φυσικὴν εἶναι τὴν ἁμαρτίαν, εἰ δή τις τοῦ τὸν πατέρα τύπτειν κρατοίη, οὐκ ἐπταινετός.
법관들에게는 그 잘못이 자연적인(유전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 아버지를 때리는 것을 참아내더라도, 그는 칭찬받지 못한다.
§2.6.21οὐ δὴ τὰς τοιαύτας ζητοῦμεν νῦν ἀκρκσίας οὐδʼ ἐγκρατείας, ἀλλὰ καθʼ ἃς ψεκτοὶ ἀπλῶς καὶ ἐπαινετοὶ λεγόμεθα.
따라서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것은 그러한 무자제나 자제가 아니라, 그것들에 의해 우리가 단적으로 비난받거나 칭찬받는다고 불리는 종류의 것들이다.
ἔστιν δὲ τῶν ἀγαθῶν τὰ μὲν ἐκτός, οἷον πλοῦτος ἀρχὴ τιμὴ φίλοι δόξα, τὰ δʼ ἀναγκαῖα καὶ περὶ σῶμα ἐστίν, οἷον ἁφή τε καὶ γεῦσις [ὁ οὖν περὶ ταῦτα ἀκρατής,οὗτος ἀπλῶς ἂν [καὶ] ἀκρατὴς δόξειενεἶναι,] καὶ ἡδοναὶ σωματικαί· ∗καὶ ἣν ζητοῦμεν ἀκρασίαν, ἤδη περὶ ταῦτα δόξειεν 〈ἂν〉 εἶναι.
그런데 좋은 것들 중에는 부, 권력, 명예, 친구, 평판 등 외적인 것들이 있고, 다른 것들은 촉각과 미각, 그리고 신체적 쾌락처럼 필수적이며 신체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에 대해 무자제한 사람, 이 사람이 단적으로 무자제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탐구하는 무자제 역시 바로 이것들에 관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2.6.22ἠπορεῖτο δὲ περὶ τί ποτʼ ἐστὶν ἡ ἀκρασία.
그러나 무자제란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었다.
περὶ μὲν οὖν τιμὴν οὐκ ἔστιν ἀπλῶς ἀκρατής·
명예에 관해서는 단적으로 무자제한 것이 아니다.
ἐπαινεῖται γάρ πως ὁ περὶ τιμὴν ἀκρατής·
명예에 대해 무자제한 사람은 어떤 점에서 칭찬받기 때문이다.
φιλότιμος γάρ τις [ἐστίν].
그는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τὸ δʼ ὅλον λέγομεν καὶ ἐπὶ τῶν τοιούτων τὸν ἀκρετῆ προστιθέντες, περὶ τιμὴν ἀκρατὴς ἢ δόξαν ἢ ὀργήν.
전체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도 한정하는 말을 덧붙여서, 명예에 대한 무자제나 평판 또는 분노에 대한 무자제라고 부른다.
ἀλλὰ τῷ ἀπλῶς ἀκρατεῖ οὐ προστίθεμεν περὶ ἅ, ὡς ὑπάρχοντος αὐτῷ καὶ φανεροῦ ὄντος ἄνευ τῆς προσθέσεως, περὶ ἐστίν·
그러나 단적으로 무자제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덧붙이지 않는데, 그러한 덧붙임이 없어도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가 이미 그 자체로 내재해 있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ἔστιν γὰρ περὶ ἡδονὰς καὶ λύπας τὰς σωματικὰς ὁ ἀπλῶς ἀκρατής.
단적으로 무자제한 사람은 신체적인 쾌락과 고통에 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2.6.23— δῆλον δὲ καὶ ἐντεῦθεν, ὅτι περὶ ταῦτα ἡ ἀκρασία·
— 이 점으로부터도 무자제가 이것들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다.
ἐπεὶ γὰρ ψεκτὸς ὁ ἀκρατής, ψεκτὰ εἶναι δεῖ τὰ ὑποκείμενα·
무자제한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하므로 그 바탕이 되는 대상들도 비난받을 만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τιμὴ μὲν οὖν καὶ δόξα καὶ ἀρχὴ καὶ χρήματα καὶ περὶ ὅσα ἄλλα ἀκρατεῖς λέγονται, οὐκ εἰσὶν ψεκτά, αἱ δʼ ἡδοναὶ αἱ σωματικαὶ ψεκταί·
명예나 평판, 권력, 재물, 그리고 그 밖에 사람들이 무자제하다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은 비난받을 만한 것들이 아니지만, 신체적인 쾌락들은 비난받을 만한 것이다.
διὸ εἰκότως ὁ περὶ ταύτας ἂν μᾶλλον τοῦ δέοντος, οὗτος ἀκρατὴς τελέως λέγεται.
그러므로 당연히 이것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완전히 무자제한 사람이라 불린다.
§2.6.24ἐπειδὴ δέ ἐστι τῶν περὶ τὰ ἄλλα ἀκρασιῶν λεγομένων ἡ περὶ τὴν ὀργὴν οὖσα ἀκρασία ψεκτοτάτη, πότερον ψεκτοτέρα ἐστὶν ἡ περὶ τὴν ὀργὴν ἢ ἡ περὶ τὰς ἡδονάς;
그런데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해지는 무자제들 중에서 분노에 관한 무자제가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인데, 그렇다면 분노에 관한 무자제와 쾌락에 관한 무자제 중 어느 쪽이 더 비난받을 만한가?
ἔστιν οὖν ἡ περὶ τὴν ὀργὴν ἀκρασία ὁμοία τῶν παίδων τοῖς πρὸς τὸ διακονεῖν προθύμως ἔχουσιν·
분노에 관한 무자제는 시중드는 일에 성급하게 열심을 내는 종들과 비슷하다.
καὶ γὰρ οὗτοι, ὅταν εἴπῃ ὁ δεσπότης ‟δός μοι”, τῇ προθυμίᾳ ἐξενεχθέντες, πρὸ τοῦ ἀκοῦσαι ὃ δεῖ δοῦναι, ἔδωκαν, καὶ ἐν τῇ δόσει διήμαρτον·
왜냐하면 이들은 주인이 "나에게 다오"라고 말하면, 그 열성에 휩쓸려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듣기도 전에 주어 버리고, 주는 과정에서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다.
πολλάκις γὰρ δέον βιβλίον δοῦναι γραφεῖον ἔδωκαν.
종종 책을 주어야 하는데 필기 도구를 주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2.6.25ὅμοιον δὲ πέπονθε τούτῳ ὁ τῆς ὀργῆς ἀκρατής·
분노에 대해 무자제한 사람이 겪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ὅταν γὰρ ἀκούσῃ τὸ πρῶτον ῥῆμα ὅτι ἠδίκησεν, ὥρμησεν ὁ θυμὸς πρὸς τὸ τιμωρήσασθαι, οὐκέτι ἀναμείνας ἀκοῦσαι πότερον δεῖ ἢ οὐ δεῖ, ἢ ὅτι γε οὐχ οὕτω σφόδρα.
왜냐하면 그는 [누군가 자신을] "해쳤다"는 첫 마디를 듣자마자, 노여움이 복수하는 쪽으로 돌진해 버려, 그것이 마땅한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적어도 그렇게 격렬하게 [복수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더 이상 귀를 기울여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