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41bκαὶ πάντα τὰ δεόμενα χειρουργικῆς ἐπιστήμης.
또한 손재주에 속하는 지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악기들도 [배제되었다].
εὐλόγως δʼ ἔχει καὶ τὸ περὶ τῶν αὐλῶν ὑπὸ τῶν ἀρχαίων μεμυθολογημένον.
또한 아울로스에 관해 옛사람들이 전하는 신화 역시 이치에 맞는다.
φασὶ γὰρ δὴ τὴν Ἀθηνᾶν εὑροῦσαν ἀποβαλεῖν τοὺς αὐλούς.
그들은 아테네가 아울로스를 발견했지만 그것을 내버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οὐ κακῶς μὲν οὖν ἔχει φάναι καὶ διὰ τὴν ἀσχημοσύνην τοῦ προσώπου τοῦτο ποιῆσαι δυσχεράνασαν τὴν θεόν·
그러므로 여신이 얼굴이 흉해지는 것을 싫어하여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οὐ μὴν ἀλλὰ μᾶλλον εἰκὸς ὅτι πρὸς τὴν διάνοιαν οὐθέν ἐστιν ἡ παιδεία τῆς αὐλήσεως, τῇ δὲ Ἀθηνᾷ τὴν ἐπιστήμην περιτίθεμεν καὶ τὴν τέχνην.
그러나 아울로스 연주의 교육이 지성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반면, 우리가 아테나에게는 지식과 기술을 부여한다는 점이 더 이치에 맞을 것이다.
ἐπεὶ δὲ τῶν τε ὀργάνων καὶ τῆς ἐργασίας ἀποδοκιμάζομεν τὴν τεχνικὴν παιδείαν (τεχνικὴν δὲ τίθεμεν τὴν πρὸς τοὺς ἀγῶνας·
그런데 우리는 악기에 대해서나 그 연주에 대해서나 전문적인 교육을 배제하는데, (우리는 경연을 위한 교육을 '전문적'이라고 규정한다.
ἐν ταύτῃ γὰρ ὁ πράττων οὐ τῆς αὑτοῦ μεταχειρίζεται χάριν ἀρετῆς, ἀλλὰ τῆς τῶν ἀκουόντων ἡδονῆς, καὶ ταύτης φορτικῆς, διόπερ οὐ τῶν ἐλευθέρων κρίνομεν εἶναι τὴν ἐργασίαν, ἀλλὰ θητικωτέραν·
왜냐하면 이러한 교육에서 연주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덕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쾌락, 그것도 저속한 쾌락을 위해 연주하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이 연주가 자유인들의 것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고용인의 일에 가깝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καὶ βαναύσους δὴ συμβαίνει γίγνεσθαι·
실제로 그들은 비속해지기 마련이다.
πονηρὸς γὰρ ὁ σκοπὸς πρὸς ὃν ποιοῦνται τὸ τέλος·
왜냐하면 그들이 목표로 삼는 목적이 나쁘기 때문이다.
ὁ γὰρ θεατὴς φορτικὸς ὢν μεταβάλλειν εἴωθε τὴν μουσικήν, ὥστε καὶ τοὺς τεχνίτας τοὺς πρὸς αὐτὸν μελετῶντας αὐτούς τε ποιούς τινας ποιεῖ καὶ τὰ σώματα διὰ τὰς κινήσεις),
σκεπτέον δή τι περί τε τὰς ἁρμονίας καὶ τοὺς ῥυθμούς, καὶ πρὸς παιδείαν πότερον πάσαις χρηστέον ταῖς ἁρμονίαις καὶ πᾶσι τοῖς ῥυθμοῖς ἢ διαιρετέον, ἔπειτα τοῖς πρὸς παιδείαν διαπονοῦσι πότερον τὸν αὐτὸν διορισμὸν θήσομεν ἢ δεῖ τινα ἕτερον.
관중은 저속하므로 음악을 변질시키는 버릇이 있으며, 그 결과 그 관중을 맞추어 연습하는 전문가들 자신도 어떤 특정한 성격의 인물로 만들고, 그들의 육체 또한 그 움직임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하르모니아와 리듬에 관해 얼마간 고찰해 보아야 한다. 교육과 관련하여 모든 하르모니아와 모든 리듬을 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구분해야 하는지, 다음으로 교육을 위해 힘쓰는 자들에게 같은 규정을 내려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규정이 필요한지 말이다.
ἐπεὶ δὴ τὴν μὲν μουσικὴν ὁρῶμεν διὰ μελοποιίας καὶ ῥυθμῶν οὖσαν, τούτων δʼ ἑκάτερον οὐ δεῖ λεληθέναι τίνα δύναμιν ἔχει πρὸς παιδείαν, καὶ πότερον προαιρετέον μᾶλλον τὴν εὐμελῆ μουσικὴν ἢ τὴν εὔρυθμον, νομίσαντες οὖν πολλὰ καλῶς λέγειν περὶ τούτων τῶν τε νῦν μουσικῶν ἐνίους καὶ τῶν ἐκ φιλοσοφίας ὅσοι τυγχάνουσιν ἐμπείρως ἔχοντες τῆς περὶ τὴν μουσικὴν παιδείας, τὴν μὲν καθʼ ἕκαστον ἀκριβολογίαν ἀποδώσομεν ζητεῖν τοῖς βουλομένοις παρʼ ἐκείνων, νῦν δὲ νομικῶς διέλωμεν, τοὺς τύπους μόνον εἰπόντες περὶ αὐτῶν.
음악이 선율 제작과 리듬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데, 이것들 각각이 교육에 대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과 리듬이 아름다운 음악 중 어느 쪽을 더 선택해야 하는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음악가들 중 일부와, 철학자들 중 음악 교육에 관해 경험이 풍부하고 이러한 점들에 대해 훌륭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여, 개별적인 사항에 관한 정밀한 논의는 그것을 원하는 자들이 그들에게서 찾아보도록 맡겨 두고, 이제는 법적인 관점에서 그것들에 대해 오직 대략적인 윤곽만을 말하며 구분하기로 하자.
ἐπεὶ δὲ τὴν διαίρεσιν ἀποδεχόμεθα τῶν μελῶν ὡς διαιροῦσί τινες τῶν ἐν φιλοσοφίᾳ, τὰ μὲν ἠθικὰ τὰ δὲ πρακτικὰ τὰ δʼ ἐνθουσιαστικὰ τιθέντες, καὶ τῶν ἁρμονιῶν τὴν φύσιν τὴν πρὸς ἕκαστα τούτων οἰκείαν, ἄλλην πρὸς ἄλλο μέρος, τιθέασι, φαμὲν δʼ οὐ μιᾶς ἕνεκεν ὠφελείας τῇ μουσικῇ χρῆσθαι δεῖν ἀλλὰ καὶ πλειόνων χάριν (καὶ γὰρ παιδείας ἕνεκεν καὶ καθάρσεως—τί δὲ λέγομεν τὴν κάθαρσιν, νῦν μὲν ἁπλῶς, πάλιν δʼ ἐν τοῖς περὶ ποιητικῆς ἐροῦμεν σαφέστερον—τρίτον δὲ πρὸς διαγωγὴν πρὸς ἄνεσίν τε καὶ πρὸς τὴν τῆς συντονίας ἀνάπαυσιν),
그런데 우리는 철학자들 중 일부가 선율을 구분하는 방식, 즉 어떤 것은 에토스적인 것, 어떤 것은 실천적인 것, 어떤 것은 영감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구분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그들은 하르모니아의 성질 또한 이것들 각각에 고유한 것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단 하나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더 많은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교육을 위해서와 정화(카타르시스)를 위해서이며 ㅡ 우리가 정화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는 지금은 단순하게 말하고, 나중에 『시학』에서 더 명확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ㅡ 세 번째로는 교양 있는 여가 선용을 위해서와 긴장 완화 및 피로로부터의 휴식을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