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Διὸ καὶ εὔλογον ἤδη τό τε πῦρ θερμαίνειν καὶ τὸ ψυχρὸν ψύχειν, καὶ ὅλως τὸ ποιητικὸν ὁμοιοῦν ἑαυτῷ τὸ πάσχον·
그러므로 이제 불이 따뜻하게 하고 차가운 것이 차갑게 하는 것, 그리고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작용을 받는 것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τό τε γὰρ ποιοῦν καὶ τὸ πάσχον ἐναντία ἐστί, καὶ ἡ γένεσις εἰς τοὐναντίον.
왜냐하면 작용하는 것과 작용을 받는 것은 대립하는 것이며, 생성은 대립하는 것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ὥστ᾿ ἀνάγκη τὸ πάσχον εἰς τὸ ποιοῦν μεταβάλλειν·
따라서 작용을 받는 것이 작용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οὕτω γὰρ ἔσται εἰς τοὐναντίον ἡ γένεσις.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대립하는 것으로의 생성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καὶ κατὰ λόγον δὴ τὸ μὴ ταὐτὰ λέγοντας ἀμφοτέροις ὅμως ἅπτεσθαι τῆς φύσεως.
그리고 서로 동일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양자 모두 자연의 실상에 닿아 있다는 것은 과연 합리적이다.
λέγομεν γὰρ πάσχειν ὁτὲ μὲν τὸ ὑποκείμενον (οἷον ὑγιάζεσθαι τὸν ἄνθρωπον καὶ θερμαίνεσθαι καὶ ψύχεσθαι καὶ τἆλλα τὸν αὐτὸν τρόπον), ὁτὲ δὲ θερμαίνεσθαι μὲν τὸ ψυχρόν, ὑγιάζεσθαι δὲ τὸ κάμνον·
왜냐하면 우리가 작용을 받는다고 말할 때, 어떤 때는 기저에 있는 것이 그렇다고 말하며(예컨대 인간이 건강해지거나 따뜻해지거나 차가워지며 그 밖의 것들도 같은 방식으로 그러하듯이), 또 어떤 때는 차가운 것이 따뜻해지거나 앓는 자가 건강해진다고 말하기 때문이며, 양자 모두 참되다.
ἀμφότερα δ᾿ ἐστὶν ἀληθῆ (τὸν αὐτὸν δὲ τρόπον καὶ ἐπὶ τοῦ ποιοῦντος·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이다.
ὁτὲ μὲν γὰρ τὸν ἄνθρωπόν φαμεν θερμαίνειν, ὁτὲ δὲ τὸ θερμόν·
왜냐하면 어떤 때는 인간이 따뜻하게 한다고 말하고, 어떤 때는 뜨거운 것이 따뜻하게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ἔστι μὲν γὰρ ὡς ἡ ὕλη πάσχει, ἔστι δ᾿ ὡς τοὐναντίοι). οἱ μὲν οὖν εἰς ἐκεῖνο βλέψαντες ταὐτόν τι δεῖν ᾠήθησαν τὸ ποιοῦν ἔχειν καὶ τὸ πάσχον, οἱ δ᾿ εἰς θάτερα τοὐναντίον.
즉 어떤 면에서는 질료가 작용을 받고, 어떤 면에서는 대립하는 것이 작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자에 주목한 이들은 작용하는 것과 작용을 받는 것이 어떤 동일한 것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쪽에 주목한 이들은 그 반대로 생각했다.
Τὸν αὐτὸν δὲ λόγον ὑποληπτέον εἶναι περὶ τοῦ ποιεῖν καὶ πάσχειν ὅνπερ καὶ περὶ τοῦ κινεῖν καὶ κινεῖσθαι.
작용함과 작용을 받음에 대해서는 운동시킴과 운동됨에 대해서와 마찬가지의 논의가 성립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διχῶς γὰρ λέγεται καὶ τὸ κινοῦν·
왜냐하면 운동시키는 것도 두 가지 뜻으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ἐν ᾧ τε γὰρ ἡ ἀρχὴ τῆς κινήσεως, δοκεῖ τοῦτο κινεῖν (ἡ γὰρ ἀρχὴ πρώτη τῶν αἰτίωι), καὶ πάλιν τὸ ἔσχατον πρὸς τὸ κινούμενον καὶ τὴν γένεσιν.
즉 그 안에서 운동의 시작이 있는 것, 이것이 운동시킨다고 여겨지며(왜냐하면 시작은 원인들 가운데 첫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시 운동되는 것과 생성에 접하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것이 그러하다.
ὁμοίως δὲ καὶ περὶ τοῦ ποιοῦντος·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καὶ γὰρ τὸν ἰατρόν φαμεν ὑγιάζειν καὶ τὸν οἶνον.
실제로 우리는 의사가 치료한다고도 말하고 포도주가 치료한다고도 말하기 때문이다.
τὸ μὲν οὖν πρῶτον κινοῦν οὐδὲν κωλύει ἐν μὲν κινήσει ἀκίνητον εἶναι (ἐν᾿ ἐνίων δὲ καὶ ἀναγκαῖοι), τὸ δ᾿ ἔσχατον ἀεὶ κινεῖν κινούμενον, ἐπὶ δὲ ποιήσεως τὸ μὲν πρῶτον ἀπαθές, τὸ δ᾿ ἔσχατον καὶ αὐτὸ πάσχον·
그리하여 최초로 운동시키는 것은 운동에 있어서 부동이어도 무방하며(어떤 경우에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반면에 마지막에 있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 운동하면서 운동시키는데, 작용의 경우에는 최초의 것은 작용을 받지 않고, 마지막 것은 스스로도 작용을 받는다.
ὅσα γὰρ μὴ ἔχει τὴν αὐτὴν ὕλην, ποιεῖ ἀπαθῆ ὄντα (οἷον ἡ ἰατρική, αὐτὴ γὰρ ποιοῦσα ὑγίειαν οὐδὲν πάσχει ὑπὸ τοῦ ὑγιαζομένου), τὸ δὲ σιτίον ποιοῦν καὶ αὐτὸ πάσχει τι·
왜냐하면 동일한 질료를 가지지 않는 것들은 스스로 작용을 받지 않으면서 작용을 미치기 때문이다(예컨대 의술이 그러한데, 그것은 스스로 건강을 만들면서 건강해지는 대상으로부터 아무런 작용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음식물은 작용하면서 스스로도 어떤 작용을 받는다.
ἢ γὰρ θερμαίνεται ἢ ψύχεται ἢ ἄλλο τι πάσχει ἅμα ποιοῦν.
즉 작용함과 동시에 따뜻해지거나 차가워지거나 다른 어떤 작용을 받기 때문이다.
ἔστι δὲ ἡ μὲν ἰατρικὴ ὡς ἀρχή, τὸ δὲ σιτίον τὸ ἔσχατον καὶ ἁπτόμενον.
그런데 의술은 시작과 같고, 음식물은 마지막에 있으면서 직접 접촉하는 것이다.
Ὅσα μὲν οὖν μὴ ἐν ὕλῃ ἔχει τὴν μορφήν, ταῦτα μὲν ἀπαθῆ τῶν ποιητικῶν, ὅσα δ᾿ ἐν ὕλῃ, παθητικά.
따라서 형상을 질료 안에 가지지 않는 작용하는 것들은 작용을 받지 않는 것이고, 질료 안에 가지는 것들은 작용을 받기 쉽다.
τὴν μὲν γὰρ ὕλην λέγομεν ὁμοίως ὡς εἰπεῖν τὴν αὐτὴν εἶναι τῶν ἀντικειμένων ὁποτερουοῦν, ὥσπερ γένος ὄν, τὸ δὲ δυνάμενον θερμὸν εἶναι παρόντος τοῦ θερμαντικοῦ καὶ πλησιάζοντος ἀνάγκη θερμαίνεσθαι·
왜냐하면 우리는 질료가 대립하는 것들 중 어느 쪽에게나 말하자면 마찬가지로 동일하다고 말하며, 그것은 마치 유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재적으로 뜨거울 수 있는 것은 뜨겁게 하는 것이 존재하며 가까이 올 때 뜨거워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διό, καθάπερ εἴρηται, τὰ μὲν τῶν ποιητικῶν ἀπαθῆ τὰ δὲ παθητικά.
그러므로 이미 말했듯이, 작용하는 것들 중 어떤 것은 작용을 받지 않고 다른 것은 작용을 받기 쉽다.
καὶ ὥσπερ ἐπὶ κινήσεως, τὸν αὐτὸν ἔχει τρόπον καὶ ἐπὶ τῶν ποιητικῶν·
그리고 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성립한다.
ἐκεῖ τε γὰρ τὸ πρώτως κινοῦν ἀκίνητον, καὶ ἐπὶ τῶν ποιητικῶν τὸ πρῶτον ποιοῦν ἀπαθές.
저기서 일차적으로 운동시키는 것이 부동이듯이, 작용하는 것들에서도 최초로 작용하는 것은 작용을 받지 않는다.
ἔστι δὲ τὸ ποιητικὸν αἴτιον ὡς ὅθεν ἡ ἀρχὴ τῆς κινήσεως.
그런데 작용하는 것은 그곳으로부터 운동의 시작이 있게 되는 원인 (시동인)이다.
τὸ δ᾿ οὗ ἕνεκα οὐ ποιητικόν (διὸ ἡ ὑγίεια οὐ ποιητικόν, εἰ μὴ κατὰ μεταφοράν)·
반면에 그것을 위하여(목적)는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건강은 비유적으로가 아니라면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καὶ γὰρ τοῦ μὲν ποιοῦντος ὅταν ὑπάρχῃ, γίνεταί τι τὸ πάσχον, τῶν δ᾿ ἕξεων παρουσῶν οὐκέτι γίνεται, ἀλλ᾿ ἔστιν ἤδη· τὰ δ᾿ εἴδη καὶ τὰ τέλη ἕξεις τινές.
왜냐하면 작용하는 것이 존재할 때는 작용을 받는 것이 무언가로 되어가지만, 상태들이 현존할 때는 더 이상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ἡ δ᾿ ὕλη ᾗ ὕλη παθητικόν.
그런데 형상들과 목적들은 일종의 상태들이다.
τὸ μὲν οὖν πῦρ ἔχι ἐν ὕλῃ τὸ θερμόν·
한편 질료는 질료인 한에서 작용을 받기 쉽다.
εἰ δέ τι εἴη θερμὸν χωριστόν, τοῦτο οὐδὲν ἂν πάσχοι.
그러므로 불은 질료 안에 뜨거운 것을 가지고 있다.
τοῦτο μὲν οὖν ἴσως ἀδύνατον εἶναι χωριστόν·
하지만 만약 어떤 이탈된 뜨거운 것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아무런 작용도 받지 않을 것이다.
εἰ δ᾿ ἐστὶν ἔνια τοιαῦτα, ἐπ᾿ ἐκείνων ἂν εἴη τὸ λεγόμενον ἀληθές.
비록 이것이 이탈해 있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그러한 것들이 몇몇 존재한다면, 그것들에 대해서 이 말은 참될 것이다.
τί μὲν οὖν τὸ ποιεῖν καὶ πάσχειν ἐστὶ καὶ τίσιν ὑπάρχει καὶ διὰ τί καὶ πῶς, διωρίσθω τοῦτον τὸν τρόπον.
그러므로 작용함과 작용을 받음이란 무엇이며, 그것들이 어떤 것들에 속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규정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