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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니코마코스 윤리학 §1.7#1

완전성과 자족성을 통한 최고선으로서의 행복 규정

123개 구절 중 5번째 · 그리스어

요약

목적의 개념을 통해 최고의 실천적 선을 탐구하며,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추구되는 온전한 선이자 그 자체만으로 삶을 충족시키는 자족적인 선으로서 행복을 최고선(목적)으로 규정한다.

§1.7#1πάλιν δʼ ἐπανέλθωμεν ἐπὶ τὸ ζητούμενον ἀγαθόν, τί ποτʼ ἂν εἴη.
다시 우리가 찾고 있는 선이 도대체 무엇인지로 돌아가 보자.
φαίνεται μὲν γὰρ ἄλλο ἐν ἄλλῃ πράξει καὶ τέχνῃ·
왜냐하면 그것은 행위와 기술에 따라 서로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ἄλλο γὰρ ἐν ἰατρικῇ καὶ στρατηγικῇ καὶ ταῖς λοιπαῖς ὁμοίως.
즉, 의술에서의 선과 장군술에서의 선이 다르고, 나머지 다른 기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τί οὖν ἑκάστης τἀγαθόν;
그렇다면 각 기술의 선은 무엇인가?
ἢ οὗ χάριν τὰ λοιπὰ πράττεται;
혹은 그것을 위해 나머지 다른 것들이 행해지는 바로 그것인가?
τοῦτο δʼ ἐν ἰατρικῇ μὲν ὑγίεια, ἐν στρατηγικῇ δὲ νίκη, ἐν οἰκοδομικῇ δʼ οἰκία, ἐν ἄλλῳ δʼ ἄλλο, ἐν ἁπάσῃ δὲ πράξει καὶ προαιρέσει τὸ τέλος·
이것은 의술에서는 건강이고, 장군술에서는 승리이며, 건축술에서는 집이고, 다른 것에서는 다른 것이며, 모든 행위와 선택에서는 목적이다.
τούτου γὰρ ἕνεκα τὰ λοιπὰ πράττουσι πάντες.
왜냐하면 모든 이가 이것을 위해 나머지 다른 것들을 행하기 때문이다.
ὥστʼ εἴ τι τῶν πρακτῶν ἁπάντων ἐστὶ τέλος, τοῦτʼ ἂν εἴη τὸ πρακτὸν ἀγαθόν, εἰ δὲ πλείω, ταῦτα.
따라서 만약 실천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의 목적이 되는 어떤 하나의 것이 있다면 이것이 실천할 수 있는 선일 것이고, 여러 개가 있다면 그것들이 그러할 것이다.
μεταβαίνων δὴ ὁ λόγος εἰς ταὐτὸν ἀφῖκται·
이처럼 논의는 진행되면서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
τοῦτο δʼ ἔτι μᾶλλον διασαφῆσαι πειρατέον.
그러나 이것을 더욱 명확히 밝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ἐπεὶ δὲ πλείω φαίνεται τὰ τέλη, τούτων δʼ αἱρούμεθά τινα διʼ ἕτερον, οἷον πλοῦτον αὐλοὺς καὶ ὅλως τὰ ὄργανα, δῆλον ὡς οὐκ ἔστι πάντα τέλεια·
그런데 목적들은 여럿인 것으로 보이고, 우리는 이것들 중 어떤 것들을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므로(예를 들어 부, 피리, 그리고 일반적으로 도구들이 그러하다), 모든 목적이 온전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τὸ δʼ ἄριστον τέλειόν τι φαίνεται.
그러나 최선의 것은 어떤 온전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ὥστʼ εἰ μέν ἐστιν ἕν τι μόνον τέλειον, τοῦτʼ ἂν εἴη τὸ ζητούμενον, εἰ δὲ πλείω, τὸ τελειότατον τούτων.
그러므로 만약 오직 하나의 온전한 것만이 있다면 이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일 것이며, 만약 여러 개가 있다면 그것들 중 가장 온전한 것일 것이다.
τελειότερον δὲ λέγομεν τὸ καθʼ αὑτὸ διωκτὸν τοῦ διʼ ἕτερον καὶ τὸ μηδέποτε διʼ ἄλλο αἱρετὸν τῶν καὶ καθʼ αὑτὰ καὶ διʼ αὐτὸ αἱρετῶν, καὶ ἁπλῶς δὴ τέλειον τὸ καθʼ αὑτὸ αἱρετὸν ἀεὶ καὶ μηδέποτε διʼ ἄλλο.
그런데 우리는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을 더 온전하다고 말하며, 그 자체로도 선택되고 그것 때문에도 선택되는 것들보다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법이 없는 것을 더 온전하다고 말하며, 단적으로 온전한 것은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되고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τοιοῦτον δʼ ἡ εὐδαιμονία μάλιστʼ εἶναι δοκεῖ·
그리고 행복이 무엇보다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ταύτην γὰρ αἱρούμεθα ἀεὶ διʼ αὐτὴν καὶ οὐδέποτε διʼ ἄλλο, τιμὴν δὲ καὶ ἡδονὴν καὶ νοῦν καὶ πᾶσαν ἀρετὴν αἱρούμεθα μὲν καὶ διʼ αὐτά (μηθενὸς γὰρ ἀποβαίνοντος ἑλοίμεθʼ ἂν ἕκαστον αὐτῶν), αἱρούμεθα δὲ καὶ τῆς εὐδαιμονίας χάριν, διὰ τούτων ὑπολαμβάνοντες εὐδαιμονήσειν.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며,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명예와 쾌락과 지성과 모든 덕은 그 자체 때문에도 선택하지만(왜냐하면 그것들로부터 아무런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들 각각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행복을 위해서도, 즉 이것들을 통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선택한다.
τὴν δʼ εὐδαιμονίαν οὐδεὶς αἱρεῖται τούτων χάριν, οὐδʼ ὅλως διʼ ἄλλο.
그러나 행복은 아무도 이것들을 위해 선택하지 않으며, 단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선택하지도 않는다.
φαίνεται δὲ καὶ ἐκ τῆς αὐταρκείας τὸ αὐτὸ συμβαίνειν·
또한 같은 결론이 자족성에서도 도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τὸ γὰρ τέλειον ἀγαθὸν αὔταρκες εἶναι δοκεῖ.
왜냐하면 온전한 선은 자족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τὸ δʼ αὔταρκες λέγομεν οὐκ αὐτῷ μόνῳ, τῷ ζῶντι βίον μονώτην, ἀλλὰ καὶ γονεῦσι καὶ τέκνοις καὶ γυναικὶ καὶ ὅλως τοῖς φίλοις καὶ πολίταις, ἐπειδὴ φύσει πολιτικὸν ὁ ἄνθρωπος.
그런데 우리가 자족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홀로 외로운 삶을 사는 본인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과 아내, 그리고 일반적으로 친구들과 시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τούτων δὲ ληπτέος ὅρος τις·
하지만 이것들에는 어떤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ἐπεκτείνοντι γὰρ ἐπὶ τοὺς γονεῖς καὶ τοὺς ἀπογόνους καὶ τῶν φίλων τοὺς φίλους εἰς ἄπειρον πρόεισιν.
왜냐하면 부모와 자손, 그리고 친구의 친구들까지 확장해 나간다면 무한히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ἀλλὰ τοῦτο μὲν εἰσαῦθις ἐπισκεπτέον·
그러나 이 일은 나중에 다시 고찰하기로 하자.
τὸ δʼ αὔταρκες τίθεμεν ὃ μονούμενον αἱρετὸν ποιεῖ τὸν βίον καὶ μηδενὸς ἐνδεᾶ·
우리는 자족적인 것을, 그것만으로도 삶을 선택할 만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만드는 것으로 규정한다.
τοιοῦτον δὲ τὴν εὐδαιμονίαν οἰόμεθα εἶναι·
그리고 우리는 행복이 바로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ἔτι δὲ πάντων αἱρετωτάτην μὴ συναριθμουμένην—συναριθμουμένην δὲ δῆλον ὡς αἱρετωτέραν μετὰ τοῦ ἐλαχίστου τῶν ἀγαθῶν·
게다가 행복은 다른 것들과 함께 합산되지 않는 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선택할 만한 것이다. 만약 합산된다면, 가장 작은 선이라도 더해짐으로써 더 선택할 만한 것이 됨이 분명하다.
ὑπεροχὴ γὰρ ἀγαθῶν γίνεται τὸ προστιθέμενον, ἀγαθῶν δὲ τὸ μεῖζον αἱρετώτερον ἀεί.
왜냐하면 덧붙여진 것은 선들의 초과분이 되며, 선한 것들 중에서는 더 큰 것이 언제나 더 선택할 만하기 때문이다.
τέλειον δή τι φαίνεται καὶ αὔταρκες ἡ εὐδαιμονία, τῶν πρακτῶν οὖσα τέλος.
그러므로 행복은 어떤 온전하고도 자족적인 것이며,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의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어휘·문법 주석

  1. 1097a15τί ποτʼ ἂν εἴη — 소사 ἄνθρωπ 동반한 현재 희구법(εἰμί의 3인칭 단수)으로, 잠재('도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주절의 권유 접속법 ἐπανέλθωμεν에 종속되는 간접의문절을 형성하고 있다.
  2. 1097a30τελειότατον — 형용사 τέλειος('완전한', '온전한', '궁극적인')의 최상급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뒤의 문맥에서 '그 자체로 추구되며 다른 것의 수단이 되지 않는 성질(궁극성)'을 τελειότερον('더 온전한')의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단순한 '질적 완벽함'이라기보다 '목적으로서의 자기완결성(궁극성)'의 정도를 가리킨다.
  3. 1097b15μὴ συναριθμουμένην — 조건을 나타내는 부정어 μή와 현재분사(중수동태 여성 대격 단수, εὐδαιμονίαν에 일치)의 결합으로, '다른 선한 것들과 합산되지 않는 한'이라는 가정적·제한적 조건을 나타낸다. 만약 행복이 다른 개별적인 선들과 같은 선상에서 합산될 수 있는 것이라면, 행복에 또 다른 선을 더한 '행복 + 알파'가 더 큰 선이 되어버려 행복이 자족적인 최고선이라는 정의와 모순되므로 이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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