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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도로스 시켈로스 · 역사총서 §17.21.1-17.21.7

그라니코스 강에서의 승리와 사르디스의 항복

723개 구절 중 626번째 · 그리스어

요약

그라니코스 강 전투는 마케도니아군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고, 페르시아의 많은 유력 장수들이 전사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사자들을 성대히 장사 지낸 후 리디아로 진군하여 사트라프 미트리네스로부터 사르디스를 평화적으로 인도받는다.

§17.21.1περὶ δʼ ἀμφοτέρων τῶν πεσόντων οἱ συγγενεῖς ἀθρόοι συστραφέντες τὸ μὲν πρῶτον ἠκόντιζον ἐπὶ τὸν Ἀλέξανδρον, ἔπειτα δὲ καὶ συστάδην μαχόμενοι πάντα κίνδυνον ὑπέμενον ὑπὲρ τοῦ φονεῦσαι τὸν βασιλέα.
쓰러진 두 사람의 친족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어, 처음에는 알렉산드로스를 향해 투창을 던졌고, 그다음에는 백병전으로 싸우며 왕을 죽이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썼다.
§17.21.2ὁ δὲ καίπερ πολλοῖς καὶ μεγάλοις κινδύνοις συνεχόμενος ὅμως οὐκ ἐνικᾶτο τοῖς πλήθεσι τῶν πολεμίων, ἀλλὰ δύο μὲν ἔχων εἰς τὸν θώρακα πληγάς, μίαν δὲ εἰς τὸ κράνος, τρεῖς δʼ εἰς τὸ καθαιρεθὲν ὅπλον ἐκ τοῦ νεὼ τῆς Ἀθηνᾶς ὅμως οὐκ ἐνεδίδου, ἀλλὰ τῷ παραστήματι τῆς ψυχῆς ἐπαιρόμενος παντὸς δεινοῦ κατεξανίστατο.
하지만 그는 비록 많고도 거대한 위험에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수세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흉갑에 두 번, 투구에 한 번, 그리고 아테나 신전에서 내려온 방패에 세 번의 타격을 받았음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영혼의 불굴의 기개로 고무되어 모든 위험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17.21.3μετὰ δὲ ταῦτα καὶ τῶν ἄλλων ἐπιφανῶν ἡγεμόνων παρʼ αὐτὸν ἐν τοῖς Πέρσαις ἔπεσον πλείους, ὧν ἦσαν ἐπιφανέστατοι Ἀτιζύης καὶ Φαρνάκης ὁ τῆς Δαρείου γυναικὸς ἀδελφός, ἔτι δὲ Μιθροβουζάνης ὁ Καππαδοκῶν ἡγούμενος.
이 일 후에 페르시아인들 중에서 그들의 곁에서 다른 저명한 장수들이 더 많이 쓰러졌는데, 그들 중 가장 저명한 이들은 아티지예스와 다레이오스 아내의 형제인 파르나케스, 그리고 카파도키아인들을 이끌던 미트로부자네스였다.
§17.21.4διὸ καὶ πολλῶν ἡγεμόνων ἀναιρεθέντων καὶ τῶν Περσικῶν τάξεων ἁπασῶν ὑπὸ τῶν Μακεδόνων ἡττωμένων πρῶτον μὲν οἱ κατὰ τὸν Ἀλέξανδρον τεταγμένοι φυγεῖν ἠναγκάσθησαν, μετὰ δὲ ταῦτα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τραπέντων ὁ μὲν βασιλεὺς ὁμολογούμενον τῆς ἀνδραγαθίας τὸ πρωτεῖον ἀπηνέγκατο καὶ τῆς ὅλης νίκης ἔδοξε μάλιστʼ αἴτιος γεγονέναι, μετὰ δὲ τοῦτον οἱ τῶν Θετταλῶν ἱππεῖς ἄριστα ταῖς εἴλαις χρώμενοι καὶ διαφόρως ἀγωνισάμενοι μεγάλην ἐπʼ ἀνδρείᾳ δόξαν ἔσχον.
그리하여 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고 페르시아의 모든 전열이 마케도니아인들에게 패배함에 따라, 첫째로 알렉산드로스 맞은편에 배치되었던 자들이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후 다른 자들마저 패주하자, 왕은 이론의 여지 없이 무용의 으뜸 자리를 차지하였고 전체 승리의 가장 큰 공헌자로 여겨졌다. 그의 다음으로는 테살리아 기병들이 자신들의 기병대를 훌륭하게 운용하고 탁월하게 싸워 무용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17.21.5μετὰ δὲ τὴν τῶν ἱππέων τροπὴν οἱ πεζοὶ συμβαλόντες ἀλλήλοις ὀλίγον χρόνον ἠγωνίσαντο·
기병이 패주한 후 보병들이 서로 맞붙었으나 짧은 시간 동안만 싸웠다.
οἱ γὰρ βάρβαροι διὰ τὴν τῶν ἱππέων τροπὴν καταπλαγέντες καὶ ταῖς ψυχαῖς ἐνδόντες πρὸς φυγὴν ὥρμησαν.
왜냐하면 이민족들은 기병들의 패주에 겁을 먹고 전의를 상실하여 도망치기 바빴기 때문이다.
§17.21.6ἀνῃρέθησαν δὲ τῶν Περσῶν οἱ πάντες πεζοὶ μὲν πλείους τῶν μυρίων, ἱππεῖς δὲ οὐκ ἐλάττους δισχιλίων, ἐζωγρήθησαν δʼ ὑπὲρ τοὺς δισμυρίους.
페르시아인 전사자는 총 보병 만 명 이상, 기병은 이천 명을 내려가지 않았으며, 생포된 자는 이만 명을 넘었다.
μετὰ δὲ τὴν μάχην ὁ βασιλεὺς τοὺς τετελευτηκότας ἔθαψε μεγαλοπρεπῶς, σπεύδων διὰ ταύτης τῆς τιμῆς τοὺς στρατιώτας προθυμοτέρους κατασκευάσαι πρὸς τοὺς ἐν ταῖς μάχαις κινδύνους.
전투가 끝난 후 왕은 전사자들을 성대하게 장사지냈는데, 이는 이와 같은 예우를 통해 병사들이 전투의 위험에 기꺼이 맞서도록 만들고자 함이었다.
§17.21.7αὐτὸς δʼ ἀναλαβὼν τὴν δύναμιν προῆγε διὰ τῆς Λυδίας, καὶ τὴν μὲν τῶν Σαρδιανῶν πόλιν καὶ τὰς ἀκροπόλεις, ἔτι δὲ τοὺς ἐν αὐταῖς θησαυρούς, παρέλαβε Μιθρίνους τοῦ σατράπου παραδόντος ἑκουσίως.
그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리디아를 통과해 전진했고, 사트라프인 미트리네스가 자발적으로 인도함에 따라 사르디스 시와 아크로폴리스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보물들을 인수했다。

어휘·문법 주석

  1. §17.21.1περὶ δʼ ἀμφοτέρων τῶν πεσόντων — 전치사 περί는 속격과 함께 '오히려 ~에 관하여'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지만, 여기서는 '쓰러진 두 사람 주변에'라는 국소적인 의미 또는 '쓰러진 두 사람의 시신을 둘러싸고'라는 쟁탈의 대상을 나타낸다. 이는 직전에 전사한 두 페르시아 귀족(스피트로바테스와 로사케스)이 누워 있는 물리적 장소 주변을 가리킨다。
  2. §17.21.2τὸ καθαιρεθὲν ὅπλον ἐκ τοῦ νεὼ τῆς Ἀθηνᾶς — 분사 καθαιρεθέν(καθαιρέω의 수동 어오리스트 분사)은 정관사 τὸ와 명사 ὅπλον 사이에 배치되어 '신전에서 내려진 방어구(방패)'라는 한정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는 알렉산드로스가 원정 도중 일리온(트로이)의 아테나 신전을 참배했을 때, 그곳에 봉헌되어 있던 신성한 방패를 내려 자신의 방어구로 삼고 대신 자신의 무기를 봉헌했다는 역사적 일화를 배경으로 한다。
  3. §17.21.4ὁμολογούμενον τῆς ἀνδραγαθίας τὸ πρωτεῖον — 현재수동분사인 ὁμολογούμενον은 명사구 τὸ πρωτεῖον(으뜸가는 자리, 수위)을 수식하는 형용사처럼 기능하며, '이견이 없는', '모두가 인정하는'을 의미한다. 속격인 τῆς ἀνδραγαθίας는 명사 πρωτεῖον에 걸리는 목적격적 또는 원인의 속격으로, '무용에 있어서의' 혹은 '무용을 이유로 하는'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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