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Ἐπεὶ δὲ τῆς ἐμπειρίας οἱ δογματικοὶ κατηγοροῦσιν, οἱ μὲν ὡς ἀσυστάτου, οἱ δὲ ὡς ἀτελοῦς, οἱ δὲ ὡς ἀτέχνου, τοῦ λόγου δὲ πάλιν οἱ ἐμπειρικοὶ ὡς πιθανοῦ μὲν, οὐκ ἀληθοῦς δὲ, διὰ τοῦτο διπλοῦς ἑκατέροις ὁ λόγος καὶ μακρὸς πάνυ περαίνεται, κατηγοροῦσί τε καὶ ἀπολογουμένοις ἐν μέρει.
도그마학파가 경험을 비난하여, 어떤 이들은 근거가 없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불완전하다고 하며, 어떤 이들은 기술이 없다고 하는 한편, 경험학파는 다시 이성을 설득력은 있으나 참되지 않다고 비난하기에, 이 때문에 양자에게 논증은 이중적이고 매우 길게 진행되니, 그들이 차례로 비난하고 또 변호하기 때문이다.
τὰ μὲν γὰρ ὑπὸ Ἀσκληπιάδου κατὰ τῆς ἐμπειρίας εἰρημένα, δεικνύντος, ὡς οἶόν τε μηδὲν πλειστάκις ὡσαύτως ὀφθῆναι δύνασθαι, παντάπασιν αὐτὴν ἀσύστατον εἶναι βούλεται, μηδέ τι σμικρότατον εὑρεῖν οὖσαν ἱκανήν.
아스클레피아데스가 경험을 대적하여 말한 바는, 어떤 것도 아주 여러 번 똑같이 관찰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면서 경험을 전적으로 근거 없는 것으로 만들고자 하며, 아주 미소한 것조차 발견할 능력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τὰ δ’ ὑπὸ Ἐρασιστράτου, τὰ μὲν ἁπλᾶ, καὶ ἐφ’ ἁπλοῖς εὑρίσκεσθαι, διὰ τῆς ἐμπειρίας ὁμολογοῦντος, οἶον ὅτι καὶ ἡ ἀνδράχνη τῆς αἱμωδίας ἴαμά ἐστιν, οὐ μὴν τάγε σύνθετα καὶ ἐπὶ συνθέτοις ἔτι συγχωροῦντος, οὐκ ἀδύνατον μὲν αὐτὴν τὸ παράπαν εὑρίσκειν, οὐ μὴν εἰς ἅπαντά γε ἱκανὴν εἶναι βούλεται.
반면 에라시스트라토스가 말한 바는, 단순한 일들과 단순한 일들에 대한 발견이 경험을 통해 이루어짐을 인정하면서, 예컨대 쇠비름이 이가 시린 것의 치료제라는 것 등은 인정하지만, 복합적인 일들과 복합적인 일들에 대한 발견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경험이 전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지는 않으나 결코 모든 것에 충분하지는 않다고 하고고자 한다.
τὰ δὲ, τῶν μὲν τοιαῦτα συγχωρούντων εὑρίσκεσθαι διὰ τῆς ἐμπειρίας, αἰτιωμένων δὲ αὐτῆς τὸ ἀπεριόριστόν τε καὶ μακρὸν, καὶ, ὡς αὐτοί φασιν, ἀμέθοδον, εἶθ’ οὕτω τὸν λόγον εἰσαγόντων, οὐκ ἀσύστατον μέν, οὐδὲ ἀνύπαρκτον, οἷον δ’ ἄτεχνόν τι πρᾶγμα τὴν ἐμπειρίαν εἶναι βούλεται.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경험을 통해 발견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경험의 무한함과 장황함,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바 체계 없음을 비난하며, 그리하여 논증을 도입하는 이들의 주장은, 경험이 근거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기술 없는 사정이라고 하고자 한다.
πρὸς ταύτας οὖν τὰς ἐφόδους τῶν λόγων ἀπολογούμενοι καὶ συστατικὴν καὶ αὐτάρκη καὶ τεχνικὴν ἐπιδεικνύναι πειρῶνται τὴν ἐμπειρίαν, καὶ αὐτοὶ δὲ τοῦ ἀναλογισμοῦ καθάπτονται πολυειδῶς, ὥστε πάλιν ἀπολογεῖσθαι πρὸς ἕκαστον εἶδος τῆς κατηγορίας τοῖς δογματικοῖς, ἀναγκαῖον.
그러므로 이러한 논증의 공격들에 맞서 변호하면서, 경험학파는 경험이 확고하고 자족적이며 기술적인 것임을 증명하려 시도하며, 그들 자신도 유비적 추론을 다각도로 공격하기에, 결과적으로 다시 도그마학파가 각 종류의 비난에 대해 변호하는 것이 필연적이게 된다.
ἐπαγγελλομένοις γὰρ αὐτοῖς τοῦ τε σώματος τὴν φύσιν ἐπίστασθαι, καὶ τῶν νοσημάτων ἁπάντων τὰς γενέσεις, καὶ τῶν ἰαμάτων τὰς δυνάμεις, ὁμόσε χωροῦντες οἱ ἐμπειρικοὶ πάντα διαβάλλουσιν, ὡς ἄχρι μὲν τοῦ πιθανοῦ καὶ εἰκότος προιόντα, βεβαίαν δὲ γνῶσιν οὐδεμίαν ἔχοντα.
도그마학파가 몸의 본성과 모든 질병의 발생, 그리고 치료제들의 효능을 알고 있다고 공언하기에, 정면으로 맞서서 경험학파는 그 모든 것을 비난하며, 그것들이 설득력과 개연성에 이르기까지 나아갈 뿐 확실한 지식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ἔστι δ’ ὅτε καὶ τὴν γνῶσιν αὐτῶν συγχωρήσαντες, τὸ ἄχρηστον αὐτῶν ἐπιδεικνύναι πειρῶνται· καὶ τοῦτό ποτε δόντες, αὖθις τὸ περιττὸν ἐξελέγχουσιν.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지식을 인정한 뒤에 그것의 쓸모없음을 증명하려 시도하며, 또 한때 이것을 허용했을 때에는 다시 그것이 불필요한 것임을 반박한다.
τοιαῦτα μὲν δὴ καθόλου πρὸς ἀλλήλους ἀμφισβητοῦσιν ἐμπειρικοί τε καὶ δογματικοί.
이와 같이 경험학파와 도그마학파는 대체로 서로에 맞서 논쟁한다.
ἐν μέρει δὲ πολλὰ καθ’ ἕκαστον αὐτῶν, οἷον ἐν ταῖς περὶ τῆς εὑρέσεως τῶν ἀφανῶν ζητήσεσιν, τῶν μὲν τὴν ἀνατομὴν, καὶ τὴν ἔνδειξιν, καὶ τὴν διαλεκτικὴν θεωρίαν ἐπαινούντων·
구체적으로는 각 사항마다 많은 논쟁이 있으니, 예컨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발견에 관한 탐구에서, 한편(도그마학파)은 해부와 지표, 그리고 변증법적 고찰을 찬양한다.
ὄργανα γὰρ αὐτοῖς ταῦτα τῶν ἀδήλων θηρευτικά·
이것들이 그들에게는 밝혀지지 않은 것들을 사냥하기 위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τῶν δ’ ἐμπειρικῶν μήθ’ εὑρίσκειν τι τὴν ἀνατομὴν συγχωρούντων, μήτ’, εἰ καὶ εὑρίσκοιτο, ἀναγκαῖον εἰς τὴν τέχνην.
반면 경험학파는 해부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고, 설령 발견된다 할지라도 이것이 기술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εἶναι τοῦτο, ἀλλὰ μήτε ἔνδειξιν ὑπάρχειν τοπαράπαν, μήθ’ ἕτερον ἐξ ἑτέρου δύνασθαι γνωσθῆναι.
오히려 지표라는 것은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의 일로부터 다른 일이 알려질 수도 없다고 한다.
πάντα γὰρ δεῖσθαι τῆς ἐξ αὐτῶν γνώσεως, μηδ’ εἶναί τι σημεῖον ἀδήλου φύσει πράγματος οὐδενός·
모든 것은 그것들 자체로부터 오는 지식을 필요로 하며, 본성상 보이지 않는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지표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ἀλλὰ μηδὲ διαλεκτικῆς δεῖσθαι μηδεμίαν τέχνην.
나아가 어떤 기술도 변증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εἶτα καὶ πρὸς τὰς ὑποθέσεις τῆς διαλεκτικῆς λέγουσί τι, καὶ πρὸς τοὺς ὅρους, καὶ οὐδὲ τὴν ἀρχὴν εἶναι ἀπόδειξίν φασιν ἀδήλου φύσει πράγματος οὐδενός.
이어서 그들은 변증법의 전제들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말하고 정의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애당초 본성상 보이지 않는 사물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ἤδη δὲ καὶ περὶ τῶν μοχθηρῶν τρόπων τῆς ἀποδείξεως, οἷς εἰώθασιν οἱ δογματικοὶ χρῆσθαι, λέγουσί τι, καὶ περὶ παντὸς ἀναλογισμοῦ·
이미 그들은 도그마학파가 흔히 사용하는 불완전한 증명 방식들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말하고, 모든 유비적 추론에 대해서도 말한다.
καὶ ὡς τοῦτο μὲν ἀδύνατος εὑρίσκειν, ὃ ἐπαγγέλλεται· καὶ οὔτ’ ἄλλη τις τέχνη συνίσταται κατ’ αὐτὸν, οὐδὲ ὁ βίος τῶν ἀνθρώπων πρόεισιν.
즉, 유비적 추론은 자신이 공언하는 바를 발견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다른 어떤 기술도 성립하지 않고 인간의 삶도 전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ὁ δὲ ἐπιλογισμὸς, ὃν δὴ φαινόμενον εἶναί φασι, χρήσιμος μὲν εἰς εὕρεσιν τῶν προσκαίρων ἀδήλων, οὕτω γὰρ αὐτοὶ καλοῦσιν, ὅσα τοῦ γένους μέν ἐστι τῶν αἰσθητῶν, οὐ μὴν ἤδη γέ πω πέφηνε.
반면 에필로기스모스(경험적 추론)는, 그들이 참으로 현상에 근거한 것이라 말하는 것인데,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발견에 유용하다고 한다. 그들은 감각되는 것들의 부류에 속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들을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χρήσιμος δὲ καὶ πρὸς ἔλεγχον τῶν κατὰ τοῦ φαινομένου τι λέγειν τολμώντων.
또한 현상에 반대되게 무언가를 감히 말하려는 자들의 반박에도 유용하다.
χρήσιμος δὲ καὶ τὸ παρορώμενον τοῖς φαινομένοις δεῖξαι, καὶ σοφίσμασιν ἀπαντῆσαι, μηδαμοῦ τῶν ἐναργῶν ἀφιστάμενος, ἀλλ’ ἐν τούτοις ἀεὶ διατρίβων, οὐ μὴν ὅγε ἀναλογισμὸς, φασὶν, ἀλλὰ ἄρχεται μὲν ἀπὸ τῶν φαινομένων, λήγει δὲ ἐπὶ τὰ διαπαντὸς ἄδηλα, καὶ διὰ τοῦτο πολυειδής ἐστιν.
또한 현상들에서 간과된 것을 보여주고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맞서는 데도 유용하니, 결코 명백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고 언제나 이것들 속에서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비적 추론은 그렇지 않고, 현상들에서 시작하여 영구히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끝나기에 다각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ἀπὸ γὰρ τῶν αὐτῶν φαινομένων ἄλλο ἐπ’ ἄλλῳ τῶν ἀδήλων παραγίνεται.
동일한 현상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저마다 다르게 도출되기 때문이다.
καὶ τὴν διαφωνίαν ἐνταῦθα προχειρίζονται τὴν ἀνεπίκριτον, ἣν δὴ σημεῖον εἶναι τῆς ἀκαταληψίας φασίν.
그리고 그들은 여기서 해결할 수 없는 불일치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참으로 불확실성의 표지라고 그들은 말한다.
οὕτω γὰρ αὐτοὶ καλοῦσιν τὴν μὲν ἀληθῆ καὶ βεβαίαν γνῶσιν κατάληψιν, ἀκαταληψίαν δὲ τὸ ἐναντίον ταύτῃ, καὶ τὴν μὲν ἀκαταληψίαν αἰτίαν εἶναί φασι τῆς διαφωνίας τῆς ἀνεπικρίτου, τὴν διαφωνίαν δ’ αὖ πάλιν τῆς ἀκαταληψίας σημεῖον.
그들 스스로 참되고 확실한 지식을 ‘파악’이라 부르고, 이것의 반대를 ‘불확실성’이라 부르며, 불확실성이 해결할 수 없는 불일치의 원인이고, 불일치는 다시 역으로 불확실성의 표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ἀνεπίκριτον δὲ τὴν ἐπὶ τῶν ἀδήλων ἀγωνολογίαν εἶναί φασιν, οὐ τὴν περὶ τῶν φαινομένων.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논쟁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논쟁이며, 현상들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고 말한다.
ἐνταῦθα γὰρ ἕκαστόν φαμεν οἷόν ἐστι, μαρτυρεῖ μὲν τοῖς ἀληθεύουσιν; ἐξελέγχει δὲ τοὺς ψευδομένους.
여기서는 우리가 각각이 어떠한지를 말하면, 현상이 참을 말하는 자들을 증언해 주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반박하기 때문이다.
τοιαῦτα μυρία πρὸς ἀλλήλους ἐρίζουσιν ἐμπειρικοί τε καὶ δογματικοὶ τὴν θεραπείαν ἐπὶ τῶν αὐτῶν παθῶν τὴν αὐτὴν ποιούμενοι, ὅσοι γε νόμῳ καθ’ ἑκατέραν τὴν αἵρεσιν ἤσκηνται.
이와 같이 경험학파와 도그마학파는 서로에 대해 무수히 다투지만, 각 학파의 규칙에 따라 수련한 이들은 누구나 동일한 질환에 대해 동일한 치료를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