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τῷ τοίνυν καταφρονεῖν τὸ θαυμάζειν ἀντικείμενον εὐγνωμονεστέρας μέν ἐστι δήπου καὶ ἡμερωτέρας φύσεως, δεῖταί γε μὴν οὐδʼ αὐτὸ μικρᾶς εὐλαβείας, τάχα δὲ καὶ μείζονος·
그러므로 멸시하는 것에 대비되는 감탄하는 것은 참으로 더 성실하고 온화한 천성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자체도 결코 작지 않은, 어쩌면 더 큰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
οἱ μὲν γὰρ καταφρονητικοὶ καὶ θρασεῖς ἧττον ὠφελοῦνται ὑπὸ τῶν λεγόντων, οἱ δὲ θαυμαστικοὶ καὶ ἄκακοι μᾶλλον βλάπτονται, καὶ τὸν Ἡράκλειτον οὐκ ἐλέγχουσιν εἰπόντα
βλὰξ ἄνθρωπος ἐπὶ παντὶ λόγῳ ἐπτοῆσθαι φιλεῖ. δεῖ δὲ τὸν μὲν ἔπαινον ἀφελῶς τοῖς λέγουσι τὴν δὲ πίστιν εὐλαβῶς προΐεσθαι τοῖς λόγοις, καὶ τῆς μὲν λέξεως καὶ προφορᾶς τῶν ἀγωνιζομένων εὐμενῆ καὶ ἁπλοῦν εἶναι θεατήν, τῆς δὲ χρείας καὶ τῆς ἀληθείας τῶν λεγομένων ἀκριβῆ καὶ πικρὸν ἐξεταστήν, ἵνʼ οἱ μὲν λέγοντες μὴ μισῶσιν, οἱ δὲ λόγοι μὴ βλάπτωσιν·
왜냐하면 멸시하기 잘하고 대담한 이들은 말하는 이들로부터 얻는 보탬이 더 적지만, 감탄하기 잘하고 순진한 이들은 오히려 더 큰 해를 입기 때문이며, 그들은 헤라클리토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말에 들뜨기 마련이다.” 그러나 찬사는 말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보내되, 신뢰는 말에 대해 신중하게 부여해야 하며, 경쟁하는 이들의 문체와 전달 방식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단순한 관객이 되어야 하지만, 말해지는 것들의 유용성과 진실성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혹독한 조사관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말하는 이들은 미움을 받지 않고, 말들은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ὡς πολλὰ ψευδῆ καὶ πονηρὰ δόγματα λανθάνομεν εὐνοίᾳ καὶ πίστει τῇ πρὸς τοὺς λέγοντας ἐνδεχόμενοι.
우리는 말하는 이들에 대한 호의와 신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거짓되고 유해한 교설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οἱ μὲν οὖν Λακεδαιμονίων ἄρχοντες ἀνδρὸς οὐκ εὖ βεβιωκότος γνώμην δοκιμάσαντες ἑτέρῳ προσέταξαν εἰπεῖν εὐδοκιμοῦντι περὶ τὸν βίον καὶ τὸ ἦθος, ὀρθῶς πάνυ καὶ πολιτικῶς ἐθίζοντες τὸν δῆμον ὑπὸ τοῦ τρόπου μᾶλλον ἢ τοῦ λόγου τῶν συμβουλευόντων ἄγεσθαι.
그리하여 라케다이몬의 집정관들은 올바르게 살지 못한 이의 의견을 승인한 뒤, 생활과 품성에서 명망이 높은 다른 이에게 그것을 발표하도록 명하였으니, 이는 매우 올바르고 정치가답게 민중이 건의자들의 말보다는 오히려 그 품성에 의해 인도되도록 길들이는 것이었다.
τοὺς δʼ ἐν φιλοσοφίᾳ λόγους ἀφαιροῦντα χρὴ τὴν τοῦ λέγοντος δόξαν αὐτοὺς ἐφʼ ἑαυτῶν ἐξετάζειν.
그러나 철학에서의 주장에 있어서는 말하는 이의 명성을 걷어내고 그것들 자체를 스스로 음미해야 한다.
ὡς γὰρ πολέμου, καὶ ἀκροάσεως πολλὰ τὰ κενά ἐστι.
전쟁에서처럼 듣는 일에서도 허장성세가 많기 때문이다.
καὶ γὰρ πολιὰ τοῦ λέγοντος καὶ πλάσμα καὶ ὀφρῦς καὶ περιαυτολογία, μάλιστα δʼ αἱ κραυγαὶ καὶ οἱ θόρυβοι καὶ τὰ πηδήματα τῶν παρόντων συνεκπλήττει τὸν ἄπειρον ἀκροατὴν καὶ νέον ὥσπερ ὑπὸ ῥεύματος παραφερόμενον.
실로 말하는 이의 백발, 꾸며낸 태도, 거만한 눈썹, 그리고 자기자랑, 무엇보다도 참석한 이들의 아우성과 소란과 날뛰는 모습은, 마치 거센 물결에 휩쓸리듯이 경험 없고 젊은 청중을 압도하여 떠내려가게 만든다.
ἔχει δέ τι καὶ ἡ λέξις ἀπατηλόν, ὅταν ἡδεῖα καὶ πολλὴ καὶ μετʼ ὄγκου τινὸς καὶ κατασκευῆς ἐπιφέρηται τοῖς πράγμασιν.
또한 문체 역시 어떤 기만성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이 감미롭고 풍부하며 어떤 엄숙함과 공들인 장식을 수반하여 사물에 가해질 때 그러하다.
ὡς γὰρ τῶν ὑπʼ αὐλοῖς ᾀδόντων αἱ πολλαὶ τοὺς ἀκούοντας ἁμαρτίαι διαφεύγουσιν, οὕτω περιττὴ καὶ σοβαρὰ λέξις ἀντιλάμπει τῷ ἀκροατῇ πρὸς τὸ δηλούμενον.
왜냐하면 피리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이들의 수많은 실수가 듣는 이들을 비껴가듯이, 과장되고 거드름 피우는 문체는 청중에게 반사되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ὁ μὲν γὰρ Μελάνθιος, ὡς ἔοικε, περὶ τῆς Διογένους τραγῳδίας ἐρωτηθεὶς οὐκ ἔφη κατιδεῖν αὐτὴν ὑπὸ τῶν ὀνομάτων ἐπιπροσθουμένην αἱ δὲ τῶν πολλῶν διαλέξεις καὶ μελέται σοφιστῶν οὐ μόνον τοῖς ὀνόμασι παραπετάσμασι χρῶνται τῶν διανοημάτων, ἀλλὰ καὶ τὴν φωνὴν ἐμμελείαις τισὶ καὶ μαλακότησι καὶ παρισώσεσιν ἐφηδύνοντες ἐκβακχεύουσι καὶ παραφέρουσι τοὺς ἀκροωμένους, κενὴν ἡδονὴν διδόντες καὶ κενωτέραν δόξαν ἀντιλαμβάνοντες.
멜란티오스는 디오게네스의 비극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이 낱말들에 가로막혀 알아볼 수 없었다고 답했다는데, 참으로 많은 소피스트들의 강연과 연습들은 단순히 단어들을 생각의 가림막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 또한 어떤 가락과 부드러움과 대구로 달콤하게 장식하여 청중들을 열광시키고 홀려버리니, 헛된 즐거움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더욱 공허한 평판을 얻는 것이다.
ὥστʼ αὐτοῖς συμβαίνει τὸ ὑπὸ Διονυσίου ῥηθέν.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디오니시오스가 말했던 일이 일어난다.
ἐκεῖνος γάρ, ὡς ἔοικεν, εὐδοκιμοῦντι κιθαρῳδῷ παρὰ τὴν θέαν ἐπαγγειλάμενος δωρεάς τινας μεγάλας ὕστερον οὐδὲν ἔδωκεν ὡς ἀποδεδωκὼς τὴν χάριν· ὅσον γάρ
ἔφη
χρόνον εὔφραινες ᾄδων, τοσοῦτον ἔχαιρες ἐλπίζων
τοῦτον δὲ τὸν ἔρανον αἱ τοιαῦται πληροῦσιν ἀκροάσεις τοῖς λέγουσι·
그 자는 공연 중에 명망 높은 키타라 연주자에게 어떤 큰 선물들을 약속했다가 나중에는 그 은혜를 이미 갚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즉 그가 이르기를, “그대가 노래하며 나를 즐겁게 해준 시간 만큼, 그대 역시 그것을 고대하며 즐거워했기 때문이오” 라고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청취들은 말하는 이들에게 바로 이러한 성격의 보답을 완성해 준다.
θαυμάζονται γὰρ ἐφʼ ὅσον τέρπουσιν, εἶθʼ ἅμα τῆς ἀκοῆς ἐξερρύη τὸ ἡδὺ κἀκείνους προλέλοιπεν ἡ δόξα, καὶ μάτην, τοῖς μὲν ὁ χρόνος τοῖς δὲ καὶ ὁ βίος ἀνάλωται.
왜냐하면 그들은 즐거움을 주는 만큼만 감탄을 자아내고, 청각에서 그 감미로움이 흘러나감과 동시에 평판 역시 그들을 떠나가며, 헛되이 청중에게는 시간이, 말하는 이에게는 인생마저 소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