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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2.1-2.2.4

테바이군의 플라타이아 야간 기습

917개 구절 중 148번째 · 그리스어

요약

테바이인들이 플라타이아 내부 내통자들의 주도로 야간에 잠입한 후, 즉각적인 무력 충돌 대신 평화적인 포고를 통해 도시를 귀순시키려 한 경위를 묘사한다.

§2.2.1τέσσαρα μὲν γὰρ καὶ δέκα ἔτη ἐνέμειναν αἱ τριακοντούτεις σπονδαὶ αἳ ἐγένοντο μετ’ Εὐβοίας ἅλωσιν·
에우보이아 함락 이후에 체결되었던 30년 평화조약은 14년 동안 유지되었다.
τῷ δὲ πέμπτῳ καὶ δεκάτῳ ἔτει, ἐπὶ Χρυσίδος ἐν Ἄργει τότε πεντήκοντα δυοῖν δέοντα ἔτη ἱερωμένης καὶ Αἰνησίου ἐφόρου ἐν Σπάρτῃ καὶ Πυθοδώρου ἔτι δύο μῆνας ἄρχοντος Ἀθηναίοις, μετὰ τὴν ἐν Ποτειδαίᾳ μάχην μηνὶ ἕκτῳ καὶ ἅμα ἦρι ἀρχομένῳ Θηβαίων ἄνδρες ὀλίγῳ πλείους τριακοσίων (ἡγοῦντο δὲ αὐτῶν βοιωταρχοῦντες Πυθάγγελός τε ὁ Φυλείδου καὶ Διέμπορος ὁ Ὀνητορίδου) ἐσῆλθον περὶ πρῶτον ὕπνον ξὺν ὅπλοις ἐς Πλάταιαν τῆς Βοιωτίας οὖσαν Ἀθηναίων ξυμμαχίδα.
그러나 15년째 되던 해, 당시 아르고스에서는 크뤼시스가 48년째 여사제로 있었고, 스파르타에서는 아이네시아스가 에포로스였으며, 아테나이에서는 퓌토도로스가 아직 아르콘 임기를 두 달 남겨두고 있었을 때, 포테이다이아 전투 후 여섯 번째 달이자 마침 봄이 시작될 무렵에, 300명을 조금 넘는 테바이인들(보이오타르케스인 퓌레이데스의 아들 퓌탕겔로스와 오네토리데스의 아들 디엠포로스가 이들을 이끌었다)이 밤의 첫 잠에 빠져들 무렵에 무장을 한 채로, 아테나이의 동맹국이자 보이오티아 지방에 있는 플라타이아로 들어갔다.
§2.2.2ἐπηγάγοντο δὲ καὶ ἀνέῳξαν τὰς πύλας Πλαταιῶν ἄνδρες, Ναυκλείδης τε καὶ οἱ μετ’ αὐτοῦ, βουλόμενοι ἰδίας ἕνεκα δυνάμεως ἄνδρας τε τῶν πολιτῶν τοὺς σφίσιν ὑπεναντίους διαφθεῖραι καὶ τὴν πόλιν Θηβαίοις προσποιῆσαι.
그들을 이끌어 들이고 플라타이아의 성문을 열어준 사람들은 나우클레이데스와 그의 일당이었는데, 이들은 사적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들과 대립하는 시민들을 처단하고 이 도시를 테바이 측에 귀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2.2.3ἔπραξαν δὲ ταῦτα δι’ Εὐρυμάχου τοῦ Λεοντιάδου, ἀνδρὸς Θηβαίων δυνατωτάτου.
그들은 테바이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인 레온티아데스의 아들 에우뤼마코스를 통해 이 일을 도모했다.
προϊδόντες γὰρ οἱ Θηβαῖοι ὅτι ἔσοιτο ὁ πόλεμος ἐβούλοντο τὴν Πλάταιαν αἰεὶ σφίσι διάφορον οὖσαν ἔτι ἐν εἰρήνῃ τε καὶ τοῦ πολέμου μήπω φανεροῦ καθεστῶτος προκαταλαβεῖν.
테바이인들은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하고, 자신들과 늘 적대 관계에 있던 플라타이아를 평화가 유지되고 전쟁이 아직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시기에 미리 선점해 두고자 했던 것이다.
ᾗ καὶ ῥᾷον ἔλαθον ἐσελθόντες, φυλακῆς οὐ προκαθεστηκυίας.
이 때문에 보초가 미리 세워져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더 쉽게 들키지 않고 침투할 수 있었다.
§2.2.4θέμενοι δὲ ἐς τὴν ἀγορὰν τὰ ὅπλα τοῖς μὲν ἐπαγαγομένοις οὐκ ἐπείθοντο ὥστε εὐθὺς ἔργου ἔχεσθαι καὶ ἰέναι ἐπὶ τὰς οἰκίας τῶν ἐχθρῶν, γνώμην δ’ ἐποιοῦντο κηρύγμασί τε χρήσασθαι ἐπιτηδείοις καὶ ἐς ξύμβασιν μᾶλλον καὶ φιλίαν τὴν πόλιν ἀγαγεῖν (καὶ ἀνεῖπεν ὁ κῆρυξ, εἴ τις βούλεται κατὰ τὰ πάτρια τῶν πάντων Βοιωτῶν ξυμμαχεῖν, τίθεσθαι παρ᾽ αὑτοὺς τὰ ὅπλα), νομίζοντες σφίσι ῥᾳδίως τούτῳ τῷ τρόπῳ προσχωρήσειν τὴν πόλιν.
그들은 광장에 무기를 내려놓고 진을 쳤으나, 자신들을 인도한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곧바로 행동에 나서서 적들의 집으로 들이닥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적절한 선언을 하여 도시를 타협과 우호로 이끌고자 계획했다. (그리하여 전령은 "만일 누구든 전체 보이오티아인들의 조상 대대의 관습에 따라 동맹을 맺고자 한다면, 우리 옆에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포고했다.) 그들은 이 방법을 통해 도시가 자신들에게 쉽게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휘·문법 주석

  1. §2.2.1ἐπὶ Χρυσίδος ἐν Ἄργει τότε πεντήκοντα δυοῖν δέοντα ἔτη ἱερωμένης καὶ Αἰνησίου ἐφόρου ἐν Σπάρτῃ καὶ Πυθοδώρου ἔτι δύο μῆνας ἄρχοντος Ἀθηναίοις — 전치사 ἐπί(~의 시기에)가 이어지는 세 개의 속격 독립 구문(크뤼시스의 여사제 임기, 아이네시아스의 에포로스 임기, 퓌토도로스의 아르콘 임기) 전체를 지배한다. 당시 그리스 세계에는 통일된 역법이 없었기 때문에, 투키디데스는 여러 주요 폴리스의 관직 임기를 병렬함으로써 전쟁 발발의 정확한 해를 특정하고 있다. '50에서 둘이 모자란'을 뜻하는 πεντήκοντα δυοῖν δέοντα는 48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2. §2.2.2ἐπηγάγοντο δὲ καὶ ἀνέῳξαν τὰς πύλας Πλαταιῶν ἄνδρες — 동사구 ἐπηγάγοντο δὲ καὶ ἀνέῳξαν τὰς πύλας(이끌어 들이고 성문을 열었다)가 문두에 놓이고, 문법적 주어인 Πλαταιῶν ἄνδρες(플라타이아의 사람들)가 뒤로 밀려나 구체적인 이름(나우클레이데스 일당)으로 동격 설명되는 도치 구조(hyperbaton)를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플라타이아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강조된다.
  3. §2.2.3ἔτι ἐν εἰρήνῃ τε καὶ τοῦ πολέμου μήπω φανεροῦ καθεστῶτος — 전치사구인 ἐν εἰρήνῃ(평화 속에)와 속격 독립 구문인 τοῦ πολέμου μήπω φανεροῦ καθεστῶτος(전쟁이 아직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중에)가 접속사 τε καί에 의해 등위적으로 연결되어, 주절 동작의 시간적 배경을 이중으로 수식하고 있다.
  4. §2.2.4εἴ τις βούλεται ... τίθεσθαι παρ᾽ αὑτοὺς τὰ ὅπλα — 부정사 τίθεσθαι는 전령의 포고(ἀνεῖπεν)를 이끄는 간접 화법 속에서 직접 화법의 명령문을 나타낸다. 또한 군사적 관용구인 τίθεσθαι τὰ ὅπλα(무기를 놓다)는 여기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다'와 '대오를 정렬하여 진을 치다(합류하다)'라는 중의적인 뉘앙스를 가지며, 테바이 측이 평화적인 제안을 가장하여 회유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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