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ἔνια τῶν ἐκ τῆς γῆς φυομένων αὐτὰ μέν ἐστιν ἄγρια τῇ φύσει καὶ ἄκαρπα καὶ βλαβερὰν τοῖς ἡμέροις σπέρμασι καὶ φυτοῖς τὴν αὔξησιν ἔχοντα, σημεῖα δʼ αὐτὰ ποιοῦνται χώρας οἱ γεωργοῦντες οὐ πονηρᾶς ἀλλὰ γενναίας καὶ πίονος·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 중에는 그 자체로는 본성상 야생이고 열매를 맺지 못하며, 재배되는 씨앗과 식물의 성장에 해를 끼치는 성장을 하는 것도 있지만, 농부들은 그것들을 나쁜 땅이 아니라 비옥하고 훌륭한 땅의 징표로 삼는다.
οὕτω δὴ καὶ πάθη ψυχῆς ἐστιν οὐ χρηστά, χρηστῆς δὲ φύσεως οἷον ἐξανθήματα καὶ λόγῳ παρασχεῖν ἐργάσιμον ἑαυτὴν ἐπιεικῶς δυναμένης.
그와 같이 혼의 감정 중에도 그 자체로는 좋지 않으나, 훌륭한 소질, 즉 이성에 의해 스스로를 잘 가꾸어질 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소질의 이른바 피어오름과 같은 것들이 있다.
ἐν τούτοις τίθεμαι καὶ τὴν λεγομένην δυσωπίαν, σημεῖον μὲν οὐ φαῦλον αἰτίαν δὲ μοχθηρίας οὖσαν.
이들 가운데 나는 이른바 수줍음을 놓아둔다. 이는 나쁘지 않은 징표이지만 해악의 원인이 된다.
τὰ γὰρ αὐτὰ τοῖς ἀναισχύντοις οἱ· αἰσχυνόμενοι πολλάκις ἁμαρτάνουσι, πλὴν ὅτι τὸ λυπεῖσθαι καὶ ἀλγεῖν ἐφʼ οἷς διαμαρτάνουσι τούτοις πρόσεστιν οὐχ ὡς ἐκείνοις τὸ ἥδεσθαι.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같은 잘못을 범하지만, 다만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범한 잘못에 대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일이 뒤따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ἀναλγὴς μὲν γὰρ ὁ ἀναιδὴς πρὸς τὸ αἰσχρόν, εὐπαθὴς δὲ καὶ πρὸς τὸ φαινόμενον αἰσχρὸν ὁ εὐδυσώπητος.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추한 일에 대해 무감각하지만, 수줍음을 타는 자는 추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ὑπερβολὴ γὰρ τοῦ αἰσχύνεσθαι τὸ δυσωπεῖσθαι.
수줍음을 탄다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일의 지나침이기 때문이다.
διὸ καὶ οὕτω κέκληται, τρόπον τινὰ τοῦ προσώπου τῇ ψυχῇ συνδιατρεπομένου καὶ συνεξατονοῦντος.
그렇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혼과 함께 얼굴이 일그러지며 동시에 기운을 잃기 때문이다.
ὡς γὰρ τὴν κατήφειαν ὁρίζονται λύπην κάτω βλέπειν ποιοῦσαν, οὕτω τὴν αἰσχυντηλίαν μέχρι τοῦ μηδʼ ἀντιβλέπειν τοῖς δεομένοις ὑπείκουσαν δυσωπίαν ὠνόμασαν.
사람들이 ‘우울’을 ‘아래를 내려다보게 만드는 슬픔’이라고 정의하듯이, 부탁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굴복해 버리는 과도한 수치심을 ‘수줍음’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ὅθεν ὁ μὲν ῥήτωρ τὸν ἀναίσχυντον οὐκ ἔφη κόρας ἐν τοῖς ὄμμασιν ἔχειν ἀλλὰ πόρνας· ὁ δʼ εὐδυσώπητος αὖ πάλιν ἄγαν τὸ θῆλυ τῆς ψυχῆς καὶ τρυφερὸν ἐμφαίνει διὰ τῆς ὄψεως, τὴν ὑπὸ τῶν ἀναισχύντων ὄψιν αἰσχύνην ὑποκοριζόμενος.
그리하여 어떤 연설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에 대해 그의 눈 속에는 처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창녀가 있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수줍음을 타는 자는 자신의 시선을 통해 혼의 지나치게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부분을 드러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과 마주하는 시선을 부끄러움이라 부르며 좋게 포장한다.
ὁ μὲν οὖν Κάτων ἔλεγε τῶν νέων μᾶλλον ἀγαπᾶν τοὺς ἐρυθριῶντας ἢ τοὺς ὠχριῶντας, ὀρθῶς ἐθίζων καὶ διδάσκων τὸν ψόγον μᾶλλον ἢ τὸν ἔλεγχον δεδιέναι καὶ τὴν ὑποψίαν μᾶλλον ἢ τὸν κίνδυνον.
그리하여 카토는 청년들 중 창백해지는 이들보다 붉어지는 이들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비판을 논박보다 더 두려워하고, 의심을 위험보다 더 두려워하도록 올바르게 길들이고 가르친 것이었다.
οὐ μὴν ἀλλὰ καὶ τοῦ πρὸς τὸν ψόγον ὑπόπτου καὶ ψοφοδεοῦς τὸ ἄγαν ἀφαιρετέον, ὡς οὐχ ἧττον ἔνιοι πολλάκις ἀκοῦσαι κακῶς ἢ παθεῖν·
그렇기는 하지만 비판을 의심하고 비난을 두려워하는 태도의 과도함 역시 제거되어야 한다.
δείσαντες ἀπεδειλίασαν, καὶ προήκαντο τὸ καλὸν οὐ δυνηθέντες ὑπομεῖναι τὸ ἄδοξον.
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험담을 듣는 것을 실제로 해를 입는 것 못지않게 두려워하여 지레 겁을 먹고, 불명예를 견뎌내지 못해 아름다운 행동을 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2οὔτε δὴ τούτους περιοπτέον οὕτως ἀσθενῶς ἔχοντας οὔτʼ αὖ πάλιν ἐκείνην ἐπαινετέον τὴν ἄτρεπτον καὶ ἀτενῆ διάθεσι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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ἐν δὲ τὸ θαρσαλέον τε καὶ ἐμμανὲς ὅππη ὀρούσαι
φαίνετʼ Ἀναξάρχου κύνεον μένος·
따라서 이렇듯 나약한 상태에 있는 이들을 방치해서도 안 되며, 다른 한편으로 저 흔들림 없고 굳건한 태도를 찬양해서도 안 된다. 곧, “그러나 그 어디로 달려들든, 그곳에는 아낙사르코스의 개와 같은, 대담하고 미쳐 날뛰는 광기가 나타난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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ἀλλʼ ἐμμελῆ τινα μηχανητέον σύγκρασιν ἀμφοῖν, τοῦ μὲν ἀτενοῦς ἄγαν τὴν ἀναίδειαν τοῦ δʼ ἐπιεικοῦς σφόδρα τὴν ἀσθένειαν ἀφαιροῦσαν.
오히려 우리는 양자의 조화로운 혼합을 고안해야 하며, 너무 완고한 자에게서는 뻔뻔함을, 너무 온건한 자에게서는 나약함을 깎아내야 한다.
ᾗ καὶ τὸ θεράπευμα δυσχερὲς καὶ οὐκ ἀκίνδυνος ἡ τῶν τοιούτων πλεονασμῶν κόλουσις·
그러한 점에서 치료 역시 까다로우며, 이러한 과잉된 성향들을 잘라내는 것은 위험을 동반한다.
ὡς γὰρ ὁ γεωργὸς ἄγριον μὲν ἐκκόπτων βλάστημα καὶ ἀγεννές, αὐτόθεν ἀφειδῶς ἐμβαλὼν τὸ σκαφεῖον ἀνέτρεψε τὴν ῥίζαν ἢ πῦρ προσαγαγὼν ἐπέκαυσεν ἀμπέλῳ δὲ προσιὼν τομῆς δεομένῃ καὶ μηλέας ἤ τινος ἐλαίας ἁπτόμενος, εὐλαβῶς ἐπιφέρει τὴν χεῖρα, δεδιὼς μή τι τοῦ ὑγιαίνοντος ἀποτυφλώσῃ·
농부가 야생적이고 쓸모없는 싹을 잘라낼 때는 처음부터 아낌없이 괭이를 휘둘러 뿌리를 뒤엎거나 불을 놓아 태워버리지만, 전정이 필요한 포도나무에 다가가거나 사과나무나 올리브나무에 손을 댈 때는 건강한 부분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대는 것과 같다.
οὕτως ὁ φιλόσοφος φθόνον μὲν ἐξαιρῶν νέου ψυχῆς, ἀγεννὲς βλάστημα καὶ δυστιθάσευτον, ἢ φιλαργυρίαν ἄωρον, ἢ φιληδονίαν ἐπικόπτων ἀκόλαστον αἱμάσσει καὶ πιέζει καὶ τομὴν ποιεῖ καὶ οὐλὴν βαθεῖαν ὅταν δὲ τρυφερῷ μέρει ψυχῆς καὶ ἁπαλῷ κολούοντα προσαγάγῃ λόγον, οἷόν ἐστι τὸ δυσωπούμενον καὶ διατρεπόμενον, εὐλαβεῖται μὴ λάθῃ τούτοις συναποκόψας τὸ αἰδούμενον.
이처럼 철학자도 청년의 혼에서 비열하고 길들이기 어려운 싹인 질투를 뽑아내거나, 시기 부적절한 탐욕이나 방종한 쾌락의 사랑을 잘라낼 때는 피를 흘리게 하고, 압박하며, 칼을 대어 깊은 흉터를 남기지만, 혼의 부드럽고 연약한 부분, 곧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성향을 깎아내기 위해 이성을 대할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과 함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잘라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καὶ γὰρ αἱ τίτθαι τῶν βρεφῶν ἐκτρίβουσαι πολλάκις τὸν ῥύπον ἑλκοῦσιν ἐνίοτε τὴν σάρκα καὶ βασανίζουσιν.
유모들이 아기의 때를 밀어줄 때 종종 살갗을 벗겨 아프게 하는 것과 같다.
ὅθεν οὐ δεῖ τῶν νέων παντάπασιν ἐν χρῷ τὴν δυσωπίαν ἐκτρίβοντας ὀλιγώρους ποιεῖν καὶ λίαν ἀτρέπτους·
그러므로 청년들의 수줍음을 완전히 뿌리째 긁어냄으로써 그들을 타인을 업신여기고 지나치게 뻔뻔한 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ἀλλʼ ὥσπερ οἱ καταλύοντες οἰκίας ἱεροῖς γειτνιώσας τά γε συνεχῆ καὶ πλησίον ἐῶσι καὶ διερείδουσιν, οὕτω δεῖ τὴν δυσωπίαν κινεῖν δεδιότας συνεφελκύσασθαι τὰ ὁμοροῦντα τῆς αἰδοῦς καὶ τῆς ἐπιεικείας;
오히려 집을 허무는 이들이 신전에 인접한 건물들을 허물 때 맞닿아 있고 가까운 부분은 남겨두고 받쳐두는 것처럼, 수줍음을 움직일 때도 부끄러움과 온건함과 온화함에 인접해 있는 부분들까지 함께 끌어당겨 버리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한다.
καὶ τῆς ἡμερότητος, οἷς ὑποδέδυκε καὶ προσπλέκεται κολακεύουσα τὸν εὐδυσώπητον ὡς φιλάνθρωπον καὶ πολιτικὸν καὶ κοινὸν ἔχοντα νοῦν καὶ οὐκ ἄτεγκτον οὐδʼ αὐθέκαστον.
왜냐하면 수줍음은 이러한 덕들의 밑으로 스며들어 얽혀 들며, 수줍음을 타는 사람을 인도적이고, 시민적이며, 타인과 어울릴 줄 알고, 완고하지도 타협이 없지도 않은 사람인 것처럼 좋게 꾸며주기 때문이다.
ὅθεν εὐθὺς οἱ Στωικοὶ καὶ τῷ ῥήματι τὸ αἰσχύνεσθαι καὶ δυσωπεῖσθαι τοῦ αἰδεῖσθαι διέστησαν, ἵνα μηδὲ τὴν ὁμωνυμίαν τῷ πάθει πρόφασιν τοῦ βλάπτειν ἀπολίπωσιν.
그리하여 곧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은 말로도 부끄러워함과 수줍음을 경외심으로부터 구별했는데, 이는 그 이름의 혼동이 감정의 해악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ἀλλʼ ἡμῖν χρῆσθαι τοῖς ὀνόμασιν ἀσυκοφαντήτως δότωσαν, μᾶλλον δʼ Ὁμηρικῶς·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이름들을 아무런 트집 없이 사용하게 해 주기를, 오히려 호메로스식으로 사용하게 해 주기를 바란다.
καὶ γὰρ ἐκεῖνος εἶπεν
"αἰδώς, ἣτʼ ἄνδρας μέγα σίνεται ἠδʼ ὀνίνησι·
호메로스 역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
καὶ οὐ κακῶς τὸ βλάπτον αὐτῆς πρότερον εἶπε.
“부끄러움은 인간을 크게 해치기도 하고 이롭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그것의 해로운 면을 먼저 말한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γίγνεται γὰρ ὠφέλιμος ὑπὸ λόγου τὸ πλεονάζον ἀφελόντος καὶ τὸ μέτριον ἀπολιπόντος.
이성이 과잉된 것을 깎아내고 적절한 것을 남겨둘 때 그것은 유익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