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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9.11.98-9.11.102

원인과 운동 및 선악에 대한 부정과 교조주의자의 비판

원인, 운동, 배움, 생성 및 본성적인 선악에 대한 피론주의자들의 부정 논변이 상술되고, 마지막으로 피론주의 저술의 전승과 교조주의자들의 반론이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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καὶ τὸ αἴτιον οὖν ἐπινοοῖτʼ ἂν μόνον, ἐπεὶ εἴπερ ἐστὶν αἴτιον, ὀφείλει ἔχειν τὸ οὗ λέγεται αἴτιον, ἐπεὶ οὐκ ἔσται αἴτιον. καὶ ὥσπερ ὁ πατήρ, μὴ παρόντος τοῦ πρὸς ὃ λέγεται πατήρ, οὐκ ἂν εἴη πατήρ, οὑτωσὶ καὶ τὸ αἴτιον· οὐ πάρεστι δὲ πρὸς ὃ νοεῖται τὸ αἴτιον· οὔτε γὰρ γένεσις οὔτε φθορὰ οὔτʼ ἄλλο τι· οὐκ ἄρʼ ἐστὶν αἴτιον. καὶ μὴν εἰ ἔστιν αἴτιον, ἤτοι σῶμα σώματός ἐστιν αἴτιον ἢ ἀσώματον ἀσωμάτου· οὐδὲν δὲ τούτων· οὐκ ἄρʼ ἐστὶν αἴτιον. σῶμα μὲν οὖν σώματος οὐκ ἂν εἴη αἴτιον, ἐπείπερ ἀμφότερα τὴν αὐτὴν ἔχει φύσιν. καὶ εἰ τὸ ἕτερον αἴτιον λέγεται παρʼ ὅσον ἐστὶ σῶμα, καὶ τὸ λοιπόν, σῶμα ὄν, αἴτιον γενήσεται.

그러므로 원인 역시 생각 속에서만 구상될 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참으로 원인이라면, 그것이 원인이라고 불리는 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원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아버지가, 그에 대해 아버지라 불리는 대상이 함께 있지 않다면 아버지가 아닐 것처럼, 원인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원인이 생각되는 대상은 함께 있지 않다. 생성도 소멸도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만일 원인이 존재한다면, 물체가 물체의 원인이거나 비물체가 비물체의 원인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물체가 물체의 원인일 수는 없으니, 양자가 동일한 자연 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한쪽이 물체인 한에서 원인이라 불린다면, 나머지 한쪽도 물체인 이상 원인이 될 것이다.

κοινῶς δʼ ἀμφοτέρων αἰτίων ὄντων, οὐδὲν ἔσται τὸ πάσχον. ἀσώματον δʼ ἀσωμάτου οὐκ ἂν εἴη αἴτιον διὰ τὸν αὐτὸν λόγον· ἀσώματον δὲ σώματος οὐκ ἔστιν αἴτιον, ἐπεὶ οὐδὲν ἀσώματον ποιεῖ σῶμα. σῶμα δʼ ἀσωμάτου οὐκ ἂν εἴη αἴτιον, ὅτι τὸ γενόμενον τῆς πασχούσης ὕλης ὀφείλει εἶναι1· μηδὲν δὲ πάσχον διὰ τὸ ἀσώματον εἶναι οὐδʼ ἂν ὑπό τινος γένοιτο· οὐκ ἔστι τοίνυν αἴτιον. ᾧ συνεισάγεται τὸ ἀνυποστάτους εἶναι τὰς τῶν ὅλων ἀρχάς· δεῖ γὰρ εἶναί τι τὸ ποιοῦν καὶ δρῶν. Ἀλλὰ μὴν οὐδὲ κίνησίς ἐστι· τὸ γὰρ κινούμενον ἤτοι ἐν ᾧ ἐστι τόπῳ κινεῖται ἢ ἐν ᾧ μὴ ἔστιν· καὶ ἐν ᾧ μέν ἐστι τόπῳ οὐ κινεῖται, ἐν ᾧ δʼ οὐκ ἔστιν οὐδὲ κινεῖται· οὐκ ἔστιν οὖν κίνησις.

그러나 양쪽이 공통으로 원인이 된다면, 작용을 겪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비물체가 비물체의 원인일 수도 같은 이유로 불가능하다. 비물체가 물체의 원인이지도 않으니, 어떤 비물체도 물체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체가 비물체의 원인일 수도 없으니, 생겨나는 것은 작용을 겪는 질료에 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물체임으로 말미암아 아무 작용도 겪지 않는 것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만물의 원리들이 실체 없는 것이라는 결론도 함께 도출된다. 만들어 내고 작용하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운동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있는 장소에서 움직이거나, 아니면 그것이 있지 않은 장소에서 움직이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있는 장소에서는 움직이지 않고, 그것이 있지 않은 장소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Ἀνῄρουν δὲ καὶ μάθησιν. εἴπερ, φασί, διδάσκεταί τι, ἤτοι τὸ ὂν τῷ εἶναι διδάσκεται ἢ τὸ μὴ ὂν τῷ μὴ εἶναι2. οὔτε δὲ τὸ ὂν τῷ εἶναι διδάσκεται —ἡ γὰρ τῶν ὄντων φύσις πᾶσι φαίνεται καὶ γινώσκεται—οὔτε τὸ μὴ ὂν τῷ μὴ ὄντι· τῷ γὰρ μὴ ὄντι οὐδὲν συμβέβηκεν, ὥστʼ οὐδὲ τὸ διδάσκεσθαι. Οὐδὲ μὴν γένεσίς ἐστι, φασίν. οὔτε γὰρ τὸ ὂν γίνεται, ἔστι γάρ, οὔτε τὸ μὴ ὄν, οὐδὲ γὰρ ὑφέστηκε· τὸ δὲ μὴ ὑφεστὼς μηδʼ ὂν οὐδὲ τὸ γίνεσθαι εὐτύχηκε.

그들은 배움 역시 부정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만일 어떤 것이 가르쳐진다면, 존재하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 가르쳐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음으로 인해 가르쳐지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 가르쳐지는 것은 아니니――존재하는 것들의 본성은 모든 이에게 나타나며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존재하지 않는 것 역시 없음으로 인해 가르쳐지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아무것도 우연하게 깃들지 않으니, 가르쳐진다는 것 역시 깃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말에 따르면 생성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생겨나지 않으니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 역시 생겨나지 않으니 실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존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것은 생겨남을 누리지도 못했다.

Φύσει τε μὴ εἶναι ἀγαθὸν ἢ κακόν· εἰ γάρ τί ἐστι φύσει ἀγαθὸν καὶ κακόν, πᾶσιν ὀφείλει ἀγαθὸν ἢ κακὸν ὑπάρχειν, ὥσπερ ἡ χιὼν πᾶσι ψυχρόν· κοινὸν δʼ οὐδὲν πάντων ἀγαθὸν ἢ κακόν ἐστιν· οὐκ ἄρα ἐστὶ φύσει ἀγαθὸν ἢ κακόν. ἤτοι γὰρ πᾶν τὸ ὑπό τινος δοξαζόμενον ῥητέον ἀγαθὸν ἢ οὐ πᾶν· καὶ πᾶν μὲν οὐ ῥητέον, ἐπεὶ τὸ αὐτὸ ὑφʼ οὗ μὲν δοξάζεται ἀγαθόν, ὡς ἡ ἡδονὴ ὑπὸ Ἐπικούρου· ὑφʼ οὗ δὲ κακόν, ὑπʼ Ἀντισθένους. συμβήσεται τοίνυν τὸ αὐτὸ ἀγαθόν τʼ εἶναι καὶ κακόν. εἰ δʼ οὐ πᾶν λέγομεν τὸ ὑπό τινος δοξαζόμενον ἀγαθόν, δεήσει ἡμᾶς διακρίνειν τὰς δόξας· ὅπερ οὐκ ἐνδεχόμενόν ἐστι διὰ τὴν ἰσοσθένειαν τῶν λόγων. ἄγνωστον οὖν τὸ φύσει ἀγαθόν.

또한 본성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것이 본성적으로 좋고 나쁜 것이라면, 마치 눈이 모든 이에게 차가운 것처럼 모든 이에게 좋거나 나쁜 것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공통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이에 의해 생각되는 모든 것을 좋다고 말해야 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 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를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 되니, 동일한 것이 어떤 이――예컨대 에피쿠로스――에 의해서는 좋은 것으로 생각되고, 다른 이――안티스테네스――에 의해서는 나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것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반면에 만일 어떤 이에 의해 생각되는 모든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생각들을 판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논변들의 동등한 힘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좋은 것은 알 수 없다.

Ἔστι δὲ καὶ τὸν ὅλον τῆς συναγωγῆς αὐτῶν τρόπον συνιδεῖν ἐκ τῶν ἀπολειφθεισῶν συντάξεων. αὐτὸς μὲν γὰρ ὁ Πύρρων οὐδὲν ἀπέλιπεν, οἱ μέντοι συνήθεις αὐτοῦ Τίμων καὶ Αἰνεσίδημος καὶ Νουμήνιος καὶ Ναυσιφάνης καὶ ἄλλοι τοιοῦτοι. Οἷς ἀντιλέγοντες οἱ δογματικοί φασιν αὐτοὺς καταλαμβάνεσθαι καὶ δογματίζειν· ἐν ᾧ γὰρ δοκοῦσι διελέγχειν καταλαμβάνονται3· καὶ γὰρ ἐν τῷ αὐτῷ κρατύνουσι καὶ δογματίζουσι. καὶ γὰρ ὅτε φασὶ μηδὲν ὁρίζειν καὶ παντὶ λόγῳ λόγον ἀντικεῖσθαι, αὐτὰ ταῦτα καὶ ὁρίζονται καὶ δογματίζουσι.

그들이 논집을 구성한 방식 전체는 남겨진 저작들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피론 자신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동료들인 티몬, 아이네시데모스, 누메니오스, 나우시파네스 및 그와 같은 다른 이들이 남겼기 때문이다. 이들에 맞서 교조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이 파악을 행하고 있으며 교조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반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점에서 파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그들은 동일한 것에서 주장을 강화하고 교조화한다. 실제로 그들이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모든 논변에 논변이 대립한다고 말할 때, 바로 이것들을 스스로 규정하고 교조화하고 있는 것이다.

구문 주해3건
  1. 9.11.99τὸ γενόμενον τῆς πασχούσης ὕλης ὀφείλει εἶναι

    속격 τῆς πασχούσης ὕλης는 성질이나 기원/소속을 나타내는 서술적 속격('작용을 겪는 질료에 속해야 한다')으로, 생겨나는 것(τὸ γενόμενον)은 반드시 작용을 수용하는 질료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필연적 조건을 나타낸다.

  2. 9.11.100τῷ εἶναι διδάσκεται ἢ τὸ μὴ ὂν τῷ μὴ εἶναι

    여격 τῷ εἶναι 및 τῷ μὴ εἶναι는 이유·원인 또는 관점을 나타내는 여격('존재함으로 인해 / 존재한다는 점에서')이다. 이어지는 문장의 τῷ μὴ ὄντι 역시 이와 병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를 의미한다.

  3. 9.11.102ἐν ᾧ γὰρ δοκοῦσι διελέγχειν καταλαμβάνονται

    동사 καταλαμβάνονται· 바로 앞의 교조주의자들의 비판 αὐτοὺς καταλαμβάνεσθαι를 받아 중간태('스스로 파악을 행하고 있다')로 새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동태로 보아 '반박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점에서 붙잡힌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어지는 κρατύνουσι καὶ δογματίζουσι와의 대구 관계상 파악적 인식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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