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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9.11.103-9.11.108

현상에 따르는 삶의 기준과 판단유보를 통한 평정

회의파가 삶 자체를 파괴한다는 교조주의자들의 비판에 맞서, 회의주의자들은 수동적 현상과 일상적 관습을 삶의 기준으로 수용하면서 단지 불투명한 본질에 대한 교조적 판단만을 유보할 뿐이라고 반박하며, 판단유보와 이에 수반하는 마음의 평정함을 궁극 목적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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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ρὸς οὓς ἀποκρίνονται, Περὶ μὲν ὧν ὡς ἄνθρωποι πάσχομεν, ὁμολογοῦμεν· καὶ γὰρ ὅτι ἡμέρα ἐστὶ καὶ ὅτι ζῶμεν καὶ ἄλλα πολλὰ τῶν ἐν τῷ βίῳ φαινομένων διαγινώσκομεν· περὶ δʼ ὧν οἱ δογματικοὶ διαβεβαιοῦνται τῷ λόγῳ, φάμενοι κατειλῆφθαι, περὶ τούτων ἐπέχομεν ὡς ἀδήλων, μόνα δὲ τὰ πάθη γινώσκομεν. τὸ μὲν γὰρ ὅτι ὁρῶμεν ὁμολογοῦμεν καὶ τὸ ὅτι τόδε νοοῦμεν γινώσκομεν, πῶς δʼ ὁρῶμεν ἢ πῶς νοοῦμεν ἀγνοοῦμεν· καὶ ὅτι τόδε λευκὸν φαίνεται διηγηματικῶς λέγομεν, οὐ διαβεβαιούμενοι ὅτι καὶ ὄντως ἐστί. περὶ δὲ τῆς Οὐδὲν ὁρίζω φωνῆς καὶ τῶν ὁμοίων λέγομεν ὡς οὐ δογμάτων1·

이에 맞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겪는 바에 대해서는 우리도 인정한다. 실제로 낮이라는 점과 우리가 살아 있다는 점 및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중 많은 것들을 우리는 분별한다.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이 논변을 통해 확언하며 파악했다고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것들로서 판단을 유보하며 오직 겪는 상태들만을 인식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다는 점은 인정하고 이것을 생각한다는 점은 인식하지만, 어떻게 보는지 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희게 나타난다는 것은 서술적으로 말할 뿐이지, 실제로 진실로 그러하다고 확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라는 언명과 이와 유사한 것들에 대해서도 교조가 아닌 것으로서 말한다.

οὐ γάρ εἰσιν ὅμοια τῷ λέγειν ὅτι σφαιροειδής ἐστιν ὁ κόσμος. ἀλλὰ γὰρ τὸ μὲν ἄδηλον, αἱ δʼ ἐξομολογήσεις εἰσί. ἐν ᾧ οὖν λέγομεν μηδὲν ὁρίζειν, οὐδʼ αὐτὸ τοῦτο ὁρίζομεν. Πάλιν οἱ δογματικοί φασιν καὶ τὸν βίον αὐτοὺς ἀναιρεῖν, ἐν ᾧ πάντʼ ἐκβάλλουσιν ἐξ ὧν ὁ βίος συνέστηκεν. οἱ δὲ ψεύδεσθαί φασιν αὐτούς· οὐ γὰρ τὸ ὁρᾶν ἀναιρεῖν, ἀλλὰ τὸ πῶς ὁρᾶν ἀγνοεῖν. καὶ γὰρ τὸ φαινόμενον τιθέμεθα, οὐχ ὡς καὶ τοιοῦτον ὄν. καὶ ὅτι τὸ πῦρ καίει αἰσθανόμεθα· εἰ δὲ φύσιν ἔχει καυστικὴν ἐπέχομεν.

그것들은 우주가 구형이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는 불투명한 것이지만, 후자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바로 이 점 자체조차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교조주의자들은 그들이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내쫓는다는 점에서 삶 자체마저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교조주의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왜냐하면 보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는지 알지 못한다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는 나타나는 현상을 상정하지만, 그것이 실제로도 그러한 것으로서 상정하는 것은 아니다. 불이 태운다는 것은 우리가 감각하지만, 그것이 태우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καὶ ὅτι κινεῖταί τις βλέπομεν, καὶ ὅτι φθείρεται πῶς δὲ ταῦτα γίνεται οὐκ ἴσμεν. μόνον οὖν, φασίν, ἀνθιστάμεθα πρὸς τὰ παρυφιστάμενα τοῖς φαινομένοις ἄδηλα. καὶ γὰρ ὅτε τὴν εἰκόνα ἐξοχὰς λέγομεν ἔχειν2, τὸ φαινόμενον διασαφοῦμεν· ὅταν δʼ εἴπωμεν μὴ ἔχειν αὐτὴν ἐξοχάς, οὐκέτι ὃ φαίνεται, ἕτερον δὲ λέγομεν· ὅθεν καὶ ὁ Τίμων ἐν τῷ Πύθωνί φησι μὴ ἐκβεβηκέναι τὴν συνήθειαν. καὶ ἐν τοῖς Ἰνδαλμοῖς οὕτω λέγει, "ἀλλὰ τὸ φαινόμενον πάντη σθένει οὗπερ ἂν ἔλθῃ." καὶ ἐν τοῖς Περὶ αἰσθήσεών φησι, τὸ μέλι ὅτι ἐστὶ γλυκὺ οὐ τίθημι, τὸ δʼ ὅτι φαίνεται ὁμολογῶ.

또한 누군가가 움직인다는 것을 우리는 보며, 누군가가 소멸한다는 것도 보지만,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나타나는 현상들에 부수적으로 덧붙는 불투명한 것들에만 맞설 뿐이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실제로 그림이 요철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나타나는 현상을 명시하는 것이지만, 그림이 요철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할 때에는 더 이상 나타나는 바가 아니라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티몬 역시 『피톤』에서 일상의 관습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형상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그러나 나타나는 현상은 그것이 이르는 곳 어디서나 전적으로 힘을 떨친다.” 또한 『감각에 관하여』에서 그는 말한다. “꿀이 달다는 점을 나는 상정하지 않지만, 달게 나타난다는 점은 인정한다.”

Καὶ Αἰνεσίδημος ἐν τῷ πρώτῳ τῶν Πυρρωνείων λόγων οὐδέν φησιν ὁρίζειν τὸν Πύρρωνα δογματικῶς διὰ τὴν ἀντιλογίαν, τοῖς δὲ φαινομένοις ἀκολουθεῖν. ταὐτὰ δὲ λέγει κἀν τῷ Κατὰ σοφίας κἀν τῷ Περὶ ζητήσεως. ἀλλὰ καὶ Ζεῦξις ὁ Αἰνεσιδήμου γνώριμος ἐν τῷ Περὶ διττῶν λόγων καὶ Ἀντίοχος ὁ Λαοδικεὺς καὶ Ἀπελλᾶς ἐν τῷ Ἀγρίππᾳ τιθέασι τὰ φαινόμενα μόνα. ἔστιν οὖν κριτήριον κατὰ τοὺς σκεπτικοὺς τὸ φαινόμενον, ὡς καὶ Αἰνεσίδημός φησιν· οὕτω δὲ καὶ Ἐπίκουρος. Δημόκριτος δὲ μηδὲν εἶναι τῶν φαινομένων, τὰ δὲ μὴ εἶναι.

아이네시데모스 또한 『피론주의 논변들』 제1권에서 피론은 반대 논변들의 대립 때문에 아무것도 교조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들을 따랐다고 말한다. 그는 『지혜에 맞서』와 『탐구에 관하여』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그뿐 아니라 아이네시데모스의 친우인 제욱시스도 『이중 논변에 관하여』에서, 라오디케이아의 안티오코스도, 아펠라스도 『아그리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만을 상정한다. 그러므로 회의파에 따르면 기준이란 아이네시데모스가 말하듯 나타나는 현상이다. 에피쿠로스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나타나는 현상들 중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πρὸς τοῦτο τὸ κριτήριον τῶν φαινομένων οἱ δογματικοί φασιν ὅτι ὅτʼ ἀπὸ τῶν αὐτῶν διάφοροι προσπίπτουσι φαντασίαι, ὡς ἀπὸ τοῦ πύργου ἢ στρογγύλου ἢ τετραγώνου, ὁ σκεπτικὸς εἰ μὲν οὐδετέραν προκρινεῖ, ἀπρακτήσει· εἰ δὲ τῇ ἑτέρᾳ κατακολουθήσει, οὐκέτι τὸ ἰσοσθενές, φασί, τοῖς φαινομένοις ἀποδώσει. πρὸς οὓς οἱ σκεπτικοί φασιν ὅτι ὅτε προσπίπτουσιν ἀλλοῖαι φαντασίαι, ἑκατέρας ἐροῦμεν φαίνεσθαι· καὶ διὰ τοῦτο τὰ φαινόμενα τιθέναι ὅτι φαίνεται. τέλος δὲ οἱ σκεπτικοί φασι τὴν ἐποχήν, ᾗ σκιᾶς τρόπον ἐπακολουθεῖ ἡ ἀταραξία, ὥς φασιν οἵ τε περὶ τὸν Τίμωνα καὶ Αἰνεσίδημον·

이러한 현상의 기준에 맞서 교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일한 대상으로부터 상이한 표상들이 닥쳐올 때, 예컨대 탑으로부터 둥글거나 네모난 표상이 닥쳐올 때, 만일 회의주의자가 어느 쪽도 우선하지 않는다면 행동할 수 없게 될 것이며, 만일 한쪽을 따른다면 그들의 말대로 더 이상 나타나는 현상들에 동등한 힘을 부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이에 대해 회의파는 상이한 표상들이 닥쳐올 때 우리는 양쪽 모두 ‘나타난다’고 말할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나타나기 때문에 현상들을 상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회의파는 목적이란 판단유보이며, 이에 그림자처럼 마음의 평정함이 뒤따른다고 티몬과 아이네시데모스 계통의 사람들은 말한다.

οὔτε γὰρ τάδʼ ἑλούμεθα ἢ ταῦτα φευξόμεθα ὅσα περὶ ἡμᾶς ἐστι· τὰ δʼ ὅσα περὶ ἡμᾶς οὐκ ἔστιν, ἀλλὰ κατʼ ἀνάγκην, οὐ δυνάμεθα φεύγειν, ὡς τὸ πεινῆν καὶ διψῆν καὶ ἀλγεῖν· οὐκ ἔστι γὰρ λόγῳ περιελεῖν ταῦτα. λεγόντων δὲ τῶν δογματικῶν ὡς δυνήσεται βιοῦν ὁ σκεπτικὸς μὴ φεύγων τό, εἰ κελευσθείη, κρεουργεῖν τὸν πατέρα3, φασὶν οἱ σκεπτικοὶ ὡς δυνήσεται βιοῦν 〈ὥστε〉 * * περὶ τῶν δογματικῶν ζητήσεων ἐπέχειν, οὐ περὶ τῶν βιωτικῶν καὶ τηρητικῶν. ὥστε καὶ αἱρούμεθά τι κατὰ τὴν συνήθειαν καὶ φεύγομεν καὶ νόμοις χρώμεθα. τινὲς δὲ καὶ τὴν ἀπάθειαν, ἄλλοι δὲ τὴν πρᾳότητα τέλος εἰπεῖν φασι τοὺς σκεπτικούς.

“왜냐하면 우리에게 달린 일들에 속하는 한에서는 이것들을 선택하거나 저것들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필연에 의한 것들, 예컨대 굶주림, 목마름, 고통을 겪는 것 등은 피할 수 없으니, 논변으로 이것들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교조주의자들이 만일 명령을 받는다면 아버지를 도살하는 행위조차 회의주의자가 회피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때, 회의파는 교조적인 탐구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되 생활과 관찰에 관한 일들에 대해서는 유보하지 않음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관습에 따라 어떤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며, 법률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무정념을, 다른 이들은 온화함을 회의파의 궁극 목적으로 언급했다고 전한다.

구문 주해3건
  1. 9.11.103περὶ δὲ τῆς Οὐδὲν ὁρίζω φωνῆς καὶ τῶν ὁμοίων λέγομεν ὡς οὐ δογμάτων

    인용구인 ‘나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Οὐδὲν ὁρίζω)가 명사 φωνῆς를 동격적으로 수식한다. 후반부의 ὡς οὐ δογμάτων은 앞선 전치사 περὶ에 호응하는 속격 어구이며, ὡς는 주관적 성격 규정이나 지위를 나타내어 ‘그것들을 교조가 아닌 것으로서 말한다’는 의미를 형성한다.

  2. 9.11.105ὅτε τὴν εἰκόνα ἐξοχὰς λέγομεν ἔχειν

    ἐξοχάς(‘돌출’, ‘요철’)는 회화(εἰκών)에서 음영법이나 원근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입체감이나 돋을새김 효과를 가리킨다. 대격과 부정사 구문(λέγομεν τὴν εἰκόνα ἔχειν) 내에서 ἐξοχάς는 ἔχειν의 직접목적어이다. 이는 시각적으로 그렇게 나타나는 현상(τὸ φαινόμενον)을 진술하는 일상적 언명과 사물 자체의 물리적 실재를 단정하는 철학적 언명을 대비시키는 맥락이다.

  3. 9.11.108μὴ φεύγων τό, εἰ κελευσθείη, κρεουργεῖν τὸν πατέρα

    분사 φεύγων의 직접목적어로 관사 부정사구 τό... κρεουργεῖν τὸν πατέρα(‘아버지를 도살하는 것’)가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 간접화법적 가정절인 희구법 조건절 εἰ κελευσθείη(‘만일 명령을 받는다면’)가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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