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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9.11.87-9.11.91

마지막 두 방식과 아그리파의 다섯 가지 방식

회의주의의 열 가지 방식 중 아홉째와 열째 방식을 설명하고, 이어 아그리파 일파의 다섯 가지 방식(불일치·무한후퇴·상대성·가설·상호순환)을 제시한 뒤, 증명과 판정 기준의 불가능성을 논파하며 독단론자들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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Ἔνατος ὁ παρὰ τὸ ἐνδελεχὲς ἢ ξένον ἢ σπάνιον. οἱ γοῦν σεισμοὶ παρʼ οἷς συνεχῶς ἀποτελοῦνται οὐ θαυμάζονται, οὐδʼ ὁ ἥλιος, ὅτι καθʼ ἡμέραν ὁρᾶται. τὸν ἔνατον Φαβωρῖνος ὄγδοον, Σέξτος δὲ καὶ Αἰνεσίδημος δέκατον· ἀλλὰ καὶ τὸν δέκατον Σέξτος ὄγδοόν φησι, Φαβωρῖνος δὲ ἔνατον. Δέκατος ὁ κατὰ τὴν πρὸς ἄλλα σύμβλησιν, καθάπερ τὸ κοῦφον παρὰ τὸ βαρύ, τὸ ἰσχυρὸν παρὰ τὸ ἀσθενές, τὸ μεῖζον παρὰ τὸ ἔλαττον, τὸ ἄνω παρὰ τὸ κάτω. τὸ γοῦν δεξιὸν φύσει μὲν οὐκ ἔστι δεξιόν, κατὰ δὲ τὴν ὡς πρὸς τὸ ἕτερον σχέσιν νοεῖται· μετατεθέντος γοῦν ἐκείνου, οὐκέτʼ ἐστὶ δεξιόν.

아홉째 방식은 부단함, 기이함, 혹은 드묾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지진은 그것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의 사람들에게는 경이를 일으키지 않으며, 태양도 날마다 보이기 때문에 놀라움을 주지 않는다. 아홉째 방식을 파보리누스는 여덟째로, 섹스투스와 아이네시데모스는 열째로 삼는다. 다른 한편으로 섹스투스는 열째 방식을 여덟째라고 말하고, 파보리누스는 아홉째라고 말한다. 열째 방식은 다른 것들과의 비교에 따른 것으로, 이를테면 무거운 것에 대한 가벼운 것, 약한 것에 대한 강한 것, 작은 것에 대한 큰 것, 아래에 대한 위와 같은 것이다. 예컨대 오른쪽은 본성상 오른쪽인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관계에 따라 생각된다. 실로 상대가 자리를 옮기면 그것은 더 이상 오른쪽이 아니다.

ὁμοίως καὶ πατὴρ καὶ ἀδελφὸς ὡς πρός τι καὶ ἡμέρα ὡς πρὸς τὸν ἥλιον καὶ πάντα ὡς πρὸς τὴν διάνοιαν. ἄγνωστα οὖν τὰ πρός τι [ὡς] καθʼ ἑαυτά. καὶ οὗτοι μὲν οἱ δέκα τρόποι. Οἱ δὲ περὶ Ἀγρίππαν τούτοις ἄλλους πέντε προσεισάγουσι, τόν τʼ ἀπὸ τῆς διαφωνίας καὶ τὸν εἰς ἄπειρον ἐκβάλλοντα καὶ τὸν πρός τι καὶ τὸν ἐξ ὑποθέσεως καὶ τὸν διʼ ἀλλήλων. ὁ μὲν οὖν ἀπὸ τῆς διαφωνίας ὃ ἂν προτεθῇ ζήτημα παρὰ τοῖς φιλοσόφοις ἢ τῇ συνηθείᾳ, πλείστης μάχης καὶ ταραχῆς πλῆρες ἀποδεικνύει· ὁ δʼ εἰς ἄπειρον ἐκβάλλων οὐκ ἐᾷ βεβαιοῦσθαι τὸ ζητούμενον, διὰ τὸ ἄλλο ἀπʼ ἄλλου τὴν πίστιν λαμβάνειν καὶ οὕτως εἰς ἄπειρον.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형제도 상대적인 것이며, 낮도 태양에 대한 관계에 따른 것이고, 모든 것은 사유에 대한 관계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것들은 그 자체로서는 알 수 없다. 이것들이 열 가지 방식이다. 그런데 아그리파 일파는 이것들에 더해 다른 다섯 가지 방식을 도입한다. 곧 불일치에 따른 방식, 무한후퇴에 빠뜨리는 방식, 상대성에 따른 방식, 가설에 따른 방식, 상호순환에 따른 방식이다. 이 가운데 불일치에 따른 방식은 철학자들 사이에서든 일상적 관습에서든 제기되는 어떤 탐구 문제라도 극심한 분쟁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무한후퇴에 빠뜨리는 방식은 한 가지가 다른 것으로부터 신빙성을 얻고 그리하여 무한히 이어짐으로써 탐구되는 대상이 확증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ὁ δὲ πρός τι οὐδέν φησι καθʼ ἑαυτὸ λαμβάνεσθαι, ἀλλὰ μεθʼ ἑτέρου. ὅθεν ἄγνωστα εἶναι. ὁ δʼ ἐξ ὑποθέσεως τρόπος συνίσταται, οἰομένων τινῶν τὰ πρῶτα τῶν πραγμάτων αὐτόθεν δεῖν λαμβάνειν ὡς πιστὰ καὶ μὴ αἰτεῖσθαι· ὅ ἐστι μάταιον· τὸ ἐναντίον γάρ τις ὑποθήσεται. ὁ δὲ διʼ ἀλλήλων τρόπος συνίσταται ὅταν τὸ ὀφεῖλον τοῦ ζητουμένου πράγματος εἶναι βεβαιωτικὸν χρείαν ἔχῃ τῆς ἐκ τοῦ ζητουμένου πίστεως, οἷον εἰ τὸ εἶναι πόρους τις βεβαιῶν διὰ τὸ ἀπορροίας γίνεσθαι, αὐτὸ τοῦτο παραλαμβάνοι πρὸς βεβαίωσιν το〈ῦ〉 ἀπορροίας γίνεσθαι.

상대성에 따른 방식은 어떤 것도 그 자체로 파악되지 않고 다른 것과 함께 파악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물들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가설에 따른 방식은 사물들의 제1원리를 곧장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증명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어떤 이들이 생각할 때 성립하는데, 이는 헛된 일이다. 누군가는 그 반대의 것을 가설로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순환에 따른 방식은 탐구되는 사물을 확증해야 할 대상이 정작 탐구되는 사물로부터의 신빙성을 필요로 할 때 성립한다. 이를테면 유출물이 생겨난다는 이유로 기공이 존재함을 확증하려는 자가, 바로 그 유출물이 생겨남을 확증하기 위해 기공의 존재 자체를 끌어다 쓰는 경우와 같다.

Ἀνῄρουν δʼ οὗτοι καὶ πᾶσαν ἀπόδειξιν καὶ κριτήριον καὶ σημεῖον καὶ αἴτιον καὶ κίνησιν καὶ μάθησιν καὶ γένεσιν καὶ τὸ φύσει τι εἶναι ἀγαθὸν ἢ κακόν. πᾶσα γὰρ ἀπόδειξις, φασίν, ἢ ἐξ ἀποδεδειγμένων σύγκειται χρημάτων ἢ ἐξ ἀναποδείκτων. εἰ μὲν οὖν ἐξ ἀποδεδειγμένων, κἀκεῖνα δεήσεταί τινος ἀποδείξεως κἀντεῦθεν εἰς ἄπειρον· εἰ δʼ ἐξ ἀναποδείκτων, ἤτοι πάντων ἢ τινῶν ἢ καὶ ἑνὸς μόνου δισταζομένου, καὶ τὸ ὅλον εἶναι ἀναπόδεικτον2. εἰ δὲ δοκεῖ, φασίν, ὑπάρχειν τινὰ μηδεμιᾶς ἀποδείξεως δεόμενα, θαυμαστοὶ τῆς γνώμης1, εἰ μὴ συνιᾶσιν ὅτι εἰς αὐτὸ τοῦτο πρῶτον, ὡς ἄρʼ ἐξ αὑτῶν ἔχει τὴν πίστιν, ἀποδείξεως χρή.

또한 이들은 모든 증명, 판정 기준, 징표, 원인, 운동, 배움, 생성, 그리고 어떤 것이 본성상 좋거나 나쁘다는 것도 부정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모든 증명은 이미 증명된 전제들로 이루어지거나 증명되지 않은 전제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증명된 전제들로 이루어진다면, 그것들 역시 어떤 증명을 필요로 할 것이고 거기서부터 무한으로 나아갈 것이다. 반면에 증명되지 않은 전제들로 이루어진다면, 전체든 일부든 단 하나라도 의심스러울 때 전체 역시 증명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무런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면, 바로 이것에 대해 먼저, 곧 그것들이 스스로 신빙성을 지닌다는 점에 대해 증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그들의 식견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οὐδὲ γὰρ τὸ τέτταρα εἶναι τὰ στοιχεῖα ἐκ τοῦ τέτταρα εἶναι τὰ στοιχεῖα βεβαιωτέον. πρὸς τῷ καὶ τῶν κατὰ μέρος ἀποδείξεων ἀπιστουμένων ἄπιστον εἶναι καὶ τὴν γενικὴν ἀπόδειξιν3. ἵνα τε γνῶμεν ὅτι ἔστιν ἀπόδειξις, κριτηρίου δεῖ· καὶ ὅτι ἔστι κριτήριον, ἀποδείξεως δεῖ· ὅθεν ἑκάτερα ἀκατάληπτα ἀναπεμπόμενα ἐπʼ ἄλληλα. πῶς ἂν οὖν καταλαμβάνοιτο τὰ ἄδηλα, τῆς ἀποδείξεως ἀγνοουμένης; ζητεῖται δʼ οὐκ εἰ φαίνεται τοιαῦτα, ἀλλʼ εἰ καθʼ ὑπόστασιν οὕτως ἔχει. Εὐήθεις δὲ τοὺς δογματικοὺς ἀπέφαινον. τὸ γὰρ ἐξ ὑποθέσεως περαινόμενον οὐ σκέψεως ἀλλὰ θέσεως ἔχει λόγον. τοιούτῳ δὲ λόγῳ καὶ ὑπὲρ ἀδυνάτων ἔστιν ἐπιχειρεῖν.

원소가 넷이라는 사실은 원소가 넷이라는 사실 자체로부터 확증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별적인 증명들이 신뢰받지 못할 때 일반적인 증명 역시 신뢰받지 못한다는 점에 더하여 그러하다. 또한 증명이 존재함을 알기 위해서는 판정 기준이 필요하고, 판정 기준이 존재함을 알기 위해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양자는 서로에게 넘겨져 파악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증명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파악될 수 있겠는가? 탐구되는 것은 그것들이 그렇게 나타나는지 여부가 아니라 실재에 있어서 그러한지 여부이다. 그들은 또한 독단론자들이 어리석음을 논증했다. 가설로부터 도출되는 귀결은 탐구의 성격을 지니지 않고 자의적 설정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논리로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조차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구문 주해3건
  1. 9.11.90θαυμαστοὶ τῆς γνώμης

    반어적 감탄 표현으로 '그들의 식견/생각이란 실로 놀랍다(어처구니없다)'라는 뜻이다. 속격 τῆς γνώμης, 형용사 θαυμαστοί를 한정하는 '관련의 속격'(genitive of respect) 혹은 원인의 속격이며, 뒤이어 나오는 조건절 εἰ μὴ συνιᾶσιν을 받는 주절의 술어로 기능한다.

  2. 9.11.90καὶ τὸ ὅλον εἶναι ἀναπόδεικτον

    앞서 나온 도입 동사 φασίν에 지배받는 간접화법(대격과 부정사 구문)의 연속이다. εἰ δʼ ἐξ ἀναποδείκτων로 시작하는 조건절(동사 σύγκειται 생략)의 귀결절로서, 대격 τὸ ὅλον이 부정사 εἶναι의 의미상 주어로 기능한다.

  3. 9.11.91πρὸς τῷ καὶ τῶν κατὰ μέρος ἀποδείξεων ἀπιστουμένων ἄπιστον εἶναι καὶ τὴν γενικὴν ἀπόδειξιν

    전치사 πρός에 중성 여격 정관사가 붙은 관사 부정사(πρὸς τῷ ... εἶναι)가 결합하여 '~라는 사실에 더하여'를 뜻하는 부사구를 이룬다. 이 부정사구 안에서 τῶν κατὰ μέρος ἀποδείξεων ἀπιστουμένων는 속격 독립구문(이유/조건)을 형성하며, ἄπιστον은 부정사 εἶναι의 의미상 주어인 τὴν γενικὴν ἀπόδειξιν을 보충하는 술어 형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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