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Diogenes Laertius. Hicks, R. D.,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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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칠현인, 초기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회의주의의 선구자로 언급된 후, 교설을 거부하는 회의파의 태도와 "우리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 "조금도 더 ~하지 않다" 등 핵심 정형구들의 의미가 설명된다.
Ταύτης δὲ τῆς αἱρέσεως ἔνιοί φασιν Ὅμηρον 〈·〉1, ἐπεὶ περὶ τῶν αὐτῶν πραγμάτων παρʼ ὁντινοῦν ἄλλοτʼ ἄλλως ἀποφαίνεται καὶ οὐδὲν ὁρικῶς δογματίζει περὶ τὴν ἀπόφασιν. ἔπειτα καὶ τὰ τῶν ἑπτὰ σοφῶν σκεπτικὰ εἶναι, οἷον τὸ Μηδὲν ἄγαν, καὶ Ἐγγύα, πάρα δʼ ἄτα· δηλοῦσθαι γὰρ τῷ βεβαίως καὶ πεπεισμένως διεγγυωμένῳ ἐπακολουθεῖν ἄτην. ἀλλὰ καὶ Ἀρχίλοχον καὶ Εὐριπίδην σκεπτικῶς ἔχειν, ἐν οἷς Ἀρχίλοχος μέν φησι· "τοῖος ἀνθρώποισι θυμός, Γλαῦκε Λεπτίνεω πάϊ, γίγνεται θνητοῖς ὁκοίην Ζεὺς ἐπʼ ἡμέρην ἄγει." Εὐριπίδης δέ· "(ὡ̓͂ Ζεῦ,) τί δῆτα τοὺς ταλαιπώρους βροτοὺς φρονεῖν λέγουσι; σοῦ γὰρ ἐξηρτήμεθα δρῶμέν τε τοιάδʼ ἃ ʼν σὺ τυγχάνῃς θέλων."
어떤 이들은 호메로스가 이 학파의 시조라고 말하는데, 그가 동일한 사안들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때에 따라 다르게 진술하며 그 판단에 관하여 아무것도 확정적으로 교설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칠현인의 격언들도 회의적인 것이라고들 하니, 예컨대 "과유불급"이나 "보증을 서라, 파멸이 곁에 있나니" 같은 것들이다. 왜냐하면 확고하고 확신에 차서 보증하는 자에게 파멸이 뒤따른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르킬로코스와 에우리피데스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 아르킬로코스는 이렇게 말한다. "필멸의 인간들의 마음이란, 렙티네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여, 제우스가 이끌어 오는 그날그날의 날과 같은 것이 된다네." 또한 에우리피데스는 말한다. "오 제우스여, 가련한 필멸자들이 지혜를 가졌다고 사람들은 참으로 왜 말하는가? 우리는 그대에게 매여 있으며 그대가 우연히 바라는 바와 같은 일들을 행하거늘."
Οὐ μὴν ἀλλὰ καὶ Ξενοφάνης καὶ Ζήνων ὁ Ἐλεάτης καὶ Δημόκριτος κατʼ αὐτοὺς σκεπτικοὶ τυγχάνουσιν· ἐν οἷς Ξενοφάνης μέν φησι, "καὶ τὸ μὲν οὖν σαφὲς οὔτις ἀνὴρ ἴδεν οὐδέ τις ἔσται εἰδώς." Ζήνων δὲ τὴν κίνησιν ἀναιρεῖ λέγων, τὸ κινούμενον οὔτʼ ἐν ᾧ ἐστι τόπῳ κινεῖται οὔτʼ ἐν ᾧ μὴ ἔστι· Δημόκριτος δὲ τὰς ποιότητας ἐκβάλλων, ἵνα φησί, νόμῳ ψυχρόν, νόμῳ θερμόν, ἐτεῇ δὲ ἄτομα καὶ κενόν· καὶ πάλιν, ἐτεῇ δὲ οὐδὲν ἴδμεν· ἐν βυθῷ γὰρ ἡ ἀλήθεια. καὶ Πλάτωνα τὸ μὲν ἀληθὲς θεοῖς τε καὶ θεῶν παισὶν ἐκχωρεῖν, τὸν δʼ εἰκότα λόγον ζητεῖν. καὶ Εὐριπίδην λέγειν·
그뿐만 아니라 크세노파네스, 엘레아의 제논, 데모크리토스 역시 그들에 따르면 회의파에 해당한다. 이들 중 크세노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한 진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아는 자도 결코 있지 않으리라." 또한 제논은 운동을 부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있지 않은 장소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는 성질들을 배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습에 의해 차갑고, 관습에 의해 따뜻할 뿐, 실제로는 원자와 허공뿐이다." 또한 다시 말하기를, "실제로는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진리는 심연 속에 있으므로." 그리고 플라톤 역시 진리는 신들과 신들의 자식들에게 양보하고 개연적인 논의를 추구한다고 한다. 또한 에우리피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τίς δʼ οἶδεν εἰ τὸ ζῆν μέν ἐστι κατθανεῖν, τὸ κατθανεῖν δὲ ζῆν νομίζεται βροτοῖς;" ἀλλὰ καὶ Ἐμπεδοκλέα· "οὕτως οὔτʼ ἐπιδερκτὰ τάδʼ ἀνδράσιν οὔτʼ ἐπακουστὰ οὔτε νόῳ περιληπτά·" καὶ ἐπάνω, "αὐτὸ μόνον πεισθέντες ὅτῳ προσέκυρσεν ἕκαστος·" ἔτι μὴν Ἡράκλειτον, μὴ εἰκῆ περὶ τῶν μεγίστων συμβαλλώμεθα· καὶ Ἱπποκράτην [ἔπειτα] ἐνδοιαστῶς καὶ ἀνθρωπίνως ἀποφαίνεσθαι· καὶ πρὶν Ὅμηρον, "στρεπτὴ δὲ γλῶσσʼ ἐστὶ βροτῶν, πολέες δʼ ἔνι μῦθοι·" καὶ "ἐπέων δὲ πολὺς νομὸς ἔνθα καὶ ἔνθα·" καὶ "ὁπποῖόν κʼ εἴπῃσθα ἔπος, τοῖόν κʼ ἐπακούσαις·" τὴν ἰσοσθένειαν λέγων καὶ ἀντίθεσιν τῶν λόγων.
"사는 것이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필멸자들에게 사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나아가 엠페도클레스도 말한다. "이처럼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마음으로 파악할 수도 없나니;" 그리고 그 앞에서는, "각자 마주친 바로 그것에만 설득된 채." 더 나아가 헤라클레이토스는, "가장 중대한 일들에 관하여 함부로 추측하지 말자" 라고 하며, 히포크라테스 역시 의심하며 인간적인 방식으로 견해를 표명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에 앞서 호메로스는, "필멸자들의 혀는 변하기 쉽고, 그 안에는 수많은 말이 들어 있도다" 또한, "말들의 방목지는 이리저리 넓게 펼쳐져 있도다" 또한, "그대가 어떤 말을 하든, 그와 같은 말을 되받아 들으리라" 라고 말하여 논의들의 동등한 힘과 대립을 나타내고 있다.
Διετέλουν δὴ οἱ σκεπτικοὶ τὰ τῶν αἱρέσεων δόγματα πάντʼ ἀνατρέποντες, αὐτοὶ δʼ οὐδὲν ἀπεφαίνοντο δογματικῶς, ἕως δὲ τοῦ προφέρεσθαι τὰ τῶν ἄλλων καὶ διηγεῖσθαι μηδὲν ὁρίζοντες2, μηδʼ αὐτὸ τοῦτο. ὥστε καὶ τὸ μὴ ὁρίζειν ἀνῄρουν, λέγοντες οἷον Οὐδὲν ὁρίζομεν, ἐπεὶ ὥριζον ἄν· προφερόμεθα δέ, φασί, τὰς ἀποφάσεις εἰς μήνυσιν τῆς ἀπροπτωσίας, ὡς, εἰ καὶ νεύσαντας, τοῦτο ἐνεδέχετο δηλῶσαι3· διὰ τῆς οὖν Οὐδὲν ὁρίζομεν φωνῆς τὸ τῆς ἀρρεψίας πάθος δηλοῦται· ὁμοίως δὲ καὶ διὰ τῆς Οὐδὲν μᾶλλον καὶ τῆς Παντὶ λόγῳ λόγος ἀντίκειται καὶ τῶν ὁμοίων.
이리하여 회의파 사람들은 여러 학파의 교설들을 모두 끊임없이 전복시키면서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교설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타인들의 견해를 인용하고 서술하는 데 그치며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았고, 바로 이것조차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규정하지 않음"마저도 무효화하였으니, 예컨대 "우리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규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경솔하지 않음을 표시하기 위하여 판단들을 표명하는 것일 뿐이며, 이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도 이를 나타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통하여 마음이 기울지 않은 상태가 표시된다. 마찬가지로 "조금도 더 ~하지 않다"나 "모든 논의에는 논의가 대립한다" 및 이와 유사한 표현들을 통해서도 그러하다.
λέγεται δὲ τὸ Οὐδὲν μᾶλλον καὶ θετικῶς, ὡς ὁμοίων τινῶν ὄντων· οἷον, Οὐδὲν μᾶλλον ὁ πειρατὴς κακός ἐστιν ἢ ὁ ψεύστης. ὑπὸ δὲ τῶν σκεπτικῶν οὐ θετικῶς ἀλλʼ ἀναιρετικῶς λέγεται, ὡς ὑπὸ τοῦ ἀνασκευάζοντος καὶ λέγοντος, Οὐ μᾶλλον ἡ Σκύλλα γέγονεν ἢ ἡ Χίμαιρα. αὐτὸ δὲ τὸ Μᾶλλον ποτὲ μὲν συγκριτικῶς ἐκφέρεται, ὡς ὅταν φῶμεν μᾶλλον τὸ μέλι γλυκὺ ἢ τὴν σταφίδα· ποτὲ δὲ θετικῶς καὶ ἀναιρετικῶς4, ὡς ὅταν φῶμεν, Μᾶλλον ἡ ἀρετὴ ὠφελεῖ ἢ βλάπτει· σημαίνομεν γὰρ ὅτι ἡ ἀρετὴ ὠφελεῖ, βλάπτει δʼ οὔ.
그런데 "조금도 더 ~하지 않다"는 표현은 긍정적으로도 쓰여, 어떤 것들이 동등하기라도 한 것처럼 쓰인다. 예컨대 "해적이 거짓말쟁이보다 조금도 더 악하지 않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회의파에 의해서는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이니, 논박하는 자가 "스킬라가 키마이라보다 더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더"라는 말 자체도 어떤 때에는 비교적으로 표현되어, 예컨대 우리가 "꿀이 건포도보다 더 달다"고 말할 때와 같고, 어떤 때에는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으로 표현되어, 예컨대 우리가 "덕은 해를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유익을 준다"고 말할 때와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덕이 유익을 주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 9.11.71Ταύτης δὲ τῆς αἱρέσεως ἔνιοί φασιν Ὅμηρον 〈·〉
꺾쇠괄호로 표시된 결락부에는 통상 ἄρξαι나 προπά토ρα γεγονέναι 등의 부정사가 보충되어 이해된다. Ὅμηρον, 대격 부정사 구문의 의미상 주어로, 어떤 이들이 호메로스를 이 학파의 시조 내지 선구자로 지목함을 뜻한다.
- 9.11.74ἕως δὲ τοῦ προφέρεσθαι τὰ τῶν ἄλλων καὶ διηγεῖσθαι μηδὲν ὁρίζοντες
부정사(προφέρεσθαι, διηγεῖσθαι)를 수반하는 전치사구 ἕως τοῦ는 한계나 범위("타인들의 견해를 인용하고 서술하는 데 그치며")를 나타낸다. 분사 μηδὲν ὁρίζοντες, 주어(회의파 사람들)와 일치하며 그 서술의 양태("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은 채")를 수식한다.
- 9.11.74ὡς, εἰ καὶ νεύσαντας, τοῦτο ἐνεδέχετο δηλῶσαι
생략이 포함된 구문이다. εἰ καὶ νεύσαντας, 대격 분사를 수반하는 조건적 표현으로("마치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더라도 이를 나타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처럼"), 암묵적인 행위 주체(회의파 자신들)를 대격으로 취하고 있다.
- 9.11.75ποτὲ δὲ θετικῶς καὶ ἀναιρετικῶς
부사구 θετικῶς καὶ ἀναιρετικῶς, 뒤이어 나오는 설명("덕은 유익을 주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이 보여주듯 "한쪽은 긍정하고 다른 쪽은 부정하는 방식으로"를 의미한다. 이는 두 태도가 단순히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앞부분을 긍정하고 뒷부분을 배제하는 복합적 용법을 가리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