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Seneca, Lucius Annaeus. Ad Lucilium Epistulae Morales, Vol 1-3. Gummere, Richard Mott,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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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한에서 세네카는 답장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며, '선은 육체(물체)인가'라는 루킬리우스의 질문에 대해 스토아 철학의 논리를 빌려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이러한 정밀한 학문적 논의가 과도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배움은 학교가 아닌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Tardius rescribo ad epistulas tuas, non quia districtus occupationibus sum.1 Hanc excusationem cave audias; vaco et omnes vacant, qui volunt. Neminem res secuntur. Ipsi illas amplexantur et argumentum esse felicitatis occupationem putant. Quid ergo fuit, quare non protinus rescriberem? Id, de quo quaerebas, veniebat in contextum operis mei.
내가 그대의 편지들에 답장을 좀 늦게 쓰는 것은 업무로 분주했기 때문이 아니오. 이런 변명은 귀담아듣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나는 한가하며,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한가하오. 일이 누군가를 뒤쫓는 것은 아니오. 그들 스스로가 일들을 껴안고서 바쁜 것을 행복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내가 즉시 답장을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겠소? 그대가 묻고 있던 그 일이 내 저작의 문맥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오.
Scis enim me moralem philosophiam velle conplecti et omnes ad eam pertinentis quaestiones explicare. Itaque dubitavi utrum differrem te, donec suus isti rei veniret locus, an ius tibi extra ordinem dicerem;2 humanius visum est tam longe venientem non detinere.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도덕 철학을 포괄하고 그것에 속하는 모든 의문들을 규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나는 그 사건에 합당한 자리가 찾아올 때까지 그대를 미루어 둘 것인지, 아니면 예외적으로 그대에게 판결을 내려 줄 것인지 망설였소. 하지만 이토록 먼 곳에서 오는 이를 붙잡아 두지 않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되었소.
Itaque et hoc ex illa serie rerum cohaerentium excerpam et, si qua erunt eiusmodi, non quaerenti tibi ultro mittam. Quae sint haec interrogas? Quae scire magis iuvat quam prodest, sicut hoc, de quo quaeris: bonum an corpus sit?
그러므로 나 또한 일관되게 얽혀 있는 그 일련의 사안들로부터 이것을 발췌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일이 있다면 그대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먼저 보내 줄 것이오. 이것들이 무엇이냐고 그대는 묻소? 이것은 유익하기보다 아는 것이 더 즐거운 일들이니, 바로 그대가 묻고 있는 이것, 즉 '선(善)은 육체(물체)인가' 하는 것과 같소.
Bonum facit: prodest enim. Quod facit, corpus est. Bonum agitat animum et quodammodo format et continet, quae propria sunt corporis. Quae corporis bona sunt, corpora sunt; ergo et quae animi sunt.
선은 작용하오. 왜냐하면 그것은 이롭기 때문이오. 작용하는 것은 육체(물체)요. 선은 영혼을 자극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이것들은 육체(물체)의 고유한 속성들이오. 신체의 선인 것들은 육체(물체)요, 따라서 영혼의 선인 것들도 그러하오.
Nam et hoc corpus est. Bonum hominis necesse est corpus sit, cum ipse sit corporalis. Mentior, nisi3 et quae aiunt illum et quae valitudinem eius vel custodiunt vel restituunt, corpora sunt; ergo et bonum eius corpus est. Non puto te dubitaturum, an adfectus corpora sint—ut aliud quoque, de quo non quaeris, infulciam—tamquam ira, amor, tristitia,nisi dubitas, an vultum nobis mutent, an frontem adstringant, an faciem diffundant, an ruborem evocent, an fugent sanguinem. Quid ergo? Tam manifestas notas corporis credis inprimi nisi a corpore?
영혼 역시 육체(물체)이기 때문이오. 인간의 선은 그 자신이 육체적 존재인 이상 육체(물체)임이 필연적이오. 그를 부양하는 것들과 그의 건강을 지키거나 회복시키는 것들이 육체(물체)가 아니라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셈이오. 그러므로 인간의 선 또한 육체(물체)이오. 나는 그대가 격정들(예컨대 분노, 사랑, 슬픔 등)이 육체(물체)인지 아닌지 의심치 않으리라 생각하오. — 그대가 묻지 않은 또 다른 것도 집어넣자면 말이오 — 다만 그대가 그것들이 우리의 용모를 바꾸고, 이마를 찌푸리게 하며, 얼굴을 펴지게 하고, 붉은 기를 자아내며, 피기를 가시게 하는지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오. 그렇다면 어떻소? 이토록 명백한 신체의 흔적들이 육체(물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새겨진다고 믿는단 말이오?
Si adfectus corpora sunt, et morbi animorum, ut avaritia, crudelitas, indurata vitia et in statum inemendabilem adducta; ergo et malitia et species eius omnes, malignitas, invidia, superbia; ergo et bona, primum quia contraria istis sunt, deinde quia eadem tibi indicia praestabunt.
만일 격정들이 육체(물체)라면 탐욕, 잔인함, 그리고 교정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굳어 버린 악덕과 같은 영혼의 질병들도 그러하오. 따라서 악의와 그것의 모든 종류인 악독, 질투, 오만도 그러하오. 그러므로 선(善)들도 그러한데, 첫째로는 그것들이 저것들과 반대되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그것들이 그대에게 똑같은 증거들을 보여 주기 때문이오.
An non vides, quantum oculis det vigorem fortitudo? Quantam intentionem prudentia? Quantam modestiam et quietem reverentia? Quantam serenitatem laetitia? Quantum rigorem severitas? Quantam remissionem lenitas? Corpora ergo sunt, quae colorem habitumque corporum mutant, quae in illis regnum suum exercent. Omnes autem, quas rettuli, virtutes bona sunt, et quicquid ex illis est. Numquid est dubium, an id, quo quid tangi potest, corpus sit?
혹은 그대는 용기가 눈에 얼마나 큰 활력을 주는지 보지 못하오? 신중함은 얼마나 큰 집중을 주는지? 경외심은 얼마나 큰 겸손과 평온을 주는지? 기쁨은 얼마나 큰 맑음을 주는지? 엄격함은 얼마나 큰 긴장을 주는지? 온화함은 얼마나 큰 이완을 주는지? 그러므로 신체의 색과 상태를 변화시키고, 그것들 안에서 자신의 지배를 행사하는 것들은 육체(물체)이오. 그런데 내가 언급한 모든 덕은 선이며, 그것들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도 그러하오. 어떤 것을 접촉할 수 있게 하는 그것이 육체(물체)라는 것에 무슨 의심이 있겠소?
" Tangere enim et tangi nisi corpus nulla potest res," ut ait Lucretius. Omnia autem ista, quae dixi, non mutarent corpus, nisi tangerent; ergo corpora sunt.
루크레티우스가 말했듯이, "왜냐하면 육체(물체)가 아니면 어떤 것도 만지거나 만져질 수 없기 때문"이오. 그러나 내가 말한 저 모든 것들은 만지지 않았다면 신체를 변화시키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므로 그것들은 육체(물체)이오.
Etiam nunc cui tanta vis est, ut inpellat et cogat et retineat et inhibeat, corpus est. Quid ergo? Non timor retinet? Non audacia inpellit? Non fortitudo inmittit et impetum dat? Non moderatio refrenat ac revocat? Non gaudium extollit? Non tristitia adducit?
그리고 밀어붙이고 강제하고 저지하고 억제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진 것 역시 육체(물체)이오. 그렇다면 어떻소? 두려움은 저지하지 않소? 대담함은 밀어붙이지 않소? 용기는 돌진하게 하고 힘을 주지 않소? 절제는 억누르고 되부르지 않소? 기쁨은 고양시키지 않소? 슬픔은 위축시키지 않소?
Denique quidquid facimus, aut, malitiae aut virtutis gerimus imperio. Quod imperat corpori, corpus est, quod vim corpori adfert, corpus. Bonum corporis corporalest, bonum hominis et corporis bonum est; itaque corporale est.
요컨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악의의 명령이든 덕의 명령이든 그 지배하에 행하는 것이오. 신체에 명령하는 것은 육체(물체)이며, 신체에 힘을 가하는 것 역시 육체(물체)이오. 신체의 선은 육체적인 것이며, 인간의 선은 신체의 선이기도 하오. 그러므로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오.
Quoniam, ut voluisti, morem gessi tibi, nunc ipse dicam mihi, quod dicturum esse te video: latrunculis ludimus. In supervacuis subtilitas teritur; non faciunt bonos ista, sed doctos. Apertior res est sapere, immo simpliciter satius est ad mentem bonam uti litteris,4 sed nos ut cetera in supervacuum diffundimus, ita philosophiam ipsam.
그대가 원한 대로 내가 그대의 뜻에 따랐으니, 이제는 그대가 말할 것으로 내게 보이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말하겠소. "우리는 말판 놀이를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오. 불필요한 일들에 정밀함이 소모되고 있소. 그런 일들은 사람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박식하게 만들 뿐이오. 지혜롭다는 것은 더 명백한 일이며, 아니 오히려 좋은 마음을 얻기 위해 문학(학문)을 사용하는 편이 단순히 더 낫소.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일들을 불필요한 것에 흩뿌리듯, 철학 자체도 그렇게 흩뿌려 버리고 있소.
Quemadmodum omnium rerum, sic litterarum quoque intemperantia laboramus; non vitae sed scholae discimus. VALE.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학문(문학)의 과도함으로 고통받고 있소. 우리는 배움을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를 위해 하고 있소. 잘 있으시오.
- 106.1non quia districtus occupationibus sum
원인을 나타내는 quia 절에 직설법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세네카가 사실이 아닌 이유('~때문이 아니다')를 부정할 때는 접속법(non quod / non quia + subj.)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화자 자신의 실제적인 객관적 사실을 전제로 하여 자신이 바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직설법이 사용되었다。
- 106.2dubitavi utrum differrem te ... an ius tibi extra ordinem dicerem
utrum ... an으로 이끌리는 이중 간접의문절이다. 역사시제인 dubitavi 뒤에 이어지므로 시제 일치(consecutio temporum)에 따라 접속법 미완료과거(differrem, dicerem)가 사용되었다. 'ius dicere'는 법무관이 판결을 내리는 법정 용어로,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개별적인 답변을 해 준다는 비유로 사용되었다。
- 106.5Mentior, nisi
'만일 ~가 아니라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강한 단정을 나타내는 관용적 가정 표현이다. 조건절인 nisi 이하의 사실이 확실함을 반어적으로 강조한다。
- 106.11ad mentem bonam uti litteris
동사 uti(utor의 부정사)는 탈격을 지배하므로 litteris(litterae의 탈격, '문학, 학문'을 뜻함)를 목적어로 취한다. ad + 대격(mentem bonam)은 목적('좋은 마음을 얻기 위하여')을 나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