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Seneca, Lucius Annaeus. Ad Lucilium Epistulae Morales, Vol 1-3. Gummere, Richard Mott,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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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는 죽음, 가난, 유배와 같은 '무관심사(중간적인 것)'는 그 자체로 선악을 지니지 않으며, 덕이나 사악함이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됨을 카토와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대조적인 죽음을 통해 논증합니다. 나아가 죽음이 다른 사소한 무관심사들과 달리 자기보존 본능과 미지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기에, 이를 용기 있게 마주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정신적 단련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Nihil horum per se gloriosum est, nihil tamen sine his. Laudatur enim non paupertas, sed ille, quem paupertas non summittit nec incurvat. Laudatur non exilium, sed ille qui in exilium ivit tanquam misisset.1 Laudatur non dolor, sed ille, quem nihil coegit dolor. Nemo mortem laudat, sed eum, cuius mors ante abstulit animum quam conturbavit.
이들 중 어떤 것도 그 자체로는 영광스럽지 않지만, 이것들 없이는 아무것도 영광스러울 수 없네. 왜냐하면 찬양받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이 굴복시키지 못하고 꺾지 못한 그 사람이기 때문이네. 찬양받는 것은 유배가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을 보낸 것처럼 유배지로 떠난 그 사람이네. 찬양받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이 아무것도 강제하지 못한 그 사람이네. 누구도 죽음 자체를 찬양하지 않네. 도리어 죽음이 그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전에 생명을 앗아간 그 사람을 찬양하는 것이네.
Omnia ista per se non sunt honesta nec gloriosa, sed quicquid ex illis virtus adiit tractavitque, honestum et gloriosum facit; illa in medio posita sunt; interest, utrum malitia illis an virtus manum admoverit. Mors enim illa, quae in Catone gloriosa est, in Bruto statim turpis est et erubescenda. Hic est enim Brutus, qui cum periturus mortis moras quaereret, ad exonerandum ventrem secessit et evocatus ad mortem iussusque praebere cervicem: "praebebo," inquit, "ita vivam.2" Quae dementia est fugere, cum retro ire non possis? "Praebebo," inquit, "ita vivam." Paene adiecit' "vel sub Antonio." O hominem dignum, qui vitae dederetur!3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는 고결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으나, 덕이 그것들 중 무엇이든 다가가 다루는 것은 무엇이나 고결하고 영광스럽게 만드네. 그것들은 중간에 놓여 있는 것이며, 사악함이 그것들에 손을 댔는지 아니면 덕이 손을 댔는지가 중요하네. 카토에게는 영광스러운 저 죽음이, 브루투스에게는 즉시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되기 때문이네. 이 브루투스는 죽음을 앞두고 죽음을 미룰 핑계를 찾으며 용변을 보기 위해 자리를 피했다가, 죽음으로 불려 나와 목을 내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목을 내밀겠소, 그렇게 하여 살 수만 있다면" 하고 말한 자라네. 돌아갈 수 없을 때 도망치려 하다니 이 무슨 광기인가! "목을 내밀겠소, 그렇게 하여 살 수만 있다면" 하고 그는 말했네. 그는 "설령 안토니우스 휘하에서라도"라는 말을 덧붙일 뻔했네. 오, 삶에 내맡겨지기에(즉,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해 살아가기에) 합당한 자여!
Sed, ut coeperam dicere, vides ipsam mortem nec malum esse nec bonum; Cato illa honestissime usus est, turpissime Brutus. Omnis res quod non habuit decus, virtute addita sumit. Cubiculum lucidum dicimus, hoc idem obscurissimum est nocte.
그러나 내가 말하기 시작했듯이, 자네는 죽음 자체가 악도 선도 아님을 보고 있네. 카토는 그것을 가장 고결하게 사용했고, 브루투스는 가장 수치스럽게 사용했네. 모든 사물은 원래 가지지 못했던 품격을 덕이 더해짐으로써 얻게 되네. 우리는 어떤 방을 밝다고 말하지만, 이 동일한 방은 밤이 되면 가장 어두워지네.
Dies illi lucem infundit, nox eripit; sic istis, quae a nobis indifferentia ac media dicuntur, divitiis, viribus, formae, honoribus, regno et contra morti, exilio, malae valetudini,doloribus quaeque alia aut minus aut magis pertimuimus, aut malitia aut virtus dat boni vel mali nomen. Massa per se nec calida nec frigida est; in fornacem coniecta concaluit, in aquam demissa refrixit. Mors honesta est per illud, quod honestum est, id est virtus et animus extrema contemnens.
낮이 그 방에 빛을 들이붓고 밤이 그것을 빼앗아가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관심사 혹은 중간적인 것이라 부르는 것들, 즉 부, 체력, 외모, 명예, 왕권, 그리고 반대로 죽음, 유배, 질병, 고통, 그리고 그 밖에 우리가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두려워하는 다른 모든 것들에 사악함이나 덕이 선 혹은 악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네. 덩어리는 그 자체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네. 화로에 던져지면 뜨거워지고, 물에 잠기면 차가워지네. 죽음이 고결해지는 것은 고결한 것, 즉 덕과 극단의 상황을 경멸하는 정신을 통해서라네.
Est et horum, Lucili, quae appellamus media, grande discrimen. Non enim sic mors indifferens est, quomodo utrum capillos pares an inpares habeas. Mors inter illa est, quae mala quidem non sunt, tamen habent mali speciem; sui amor est et permanendi conservandique se insita voluntas atque aspernatio dissolutionis, quia videtur multa nobis bona eripere et nos ex hac, cui adsuevimus, rerum copia educere. Illa quoque res morti nos alienat, quod haec iam novimus, illa, ad quae transituri sumus, nescimus, qualia sint, et horremus ignota. Naturalis praeterea tenebrarum metus est, in quas adductura mors creditur.
루킬리우스여, 우리가 중간적인 것이라 부르는 이것들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네. 죽음은 머리카락 개수가 짝수인가 홀수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무관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네. 죽음은 참으로 악은 아니지만 악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들 사이에 있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고, 존속하고 자신을 보존하려는 타고난 의지 및 소멸에 대한 혐오가 존재하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에게서 많은 좋은 것들을 빼앗아가고, 우리가 익숙해진 이 풍요로운 사물들로부터 우리를 인도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네. 또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현재의 것들과 달리, 우리가 넘어가려 하는 저곳의 것들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미지의 것에 전율한다는 사실 역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소외시키네. 게다가 죽음이 우리를 이끌고 갈 것이라 믿어지는 어둠에 대한 자연적인 공포도 있네.
Itaque etiam si indifferens mors est, non tamen ea est, quae facile neglegi possit. Magna exercitatione durandus est animus, ut conspectum eius accessumque patiatur. Mors contemni debet magis quam solet. Multa enim de illa credidimus. Multorum ingeniis certatum est ad augendam eius infamiam. Descriptus est carcer infernus et perpetua nocte oppressa regio, in qua Ingens ianitor Orci Ossa super recubans antro semesa cruento, Aeternum latrans exsangues terreat umbras. Etiam cum persuaseris istas fabulas esse nec quicquam defunctis superesse, quod timeant, subit alius metus. Aeque enim timent, ne apud inferos sint, quam ne nusquam.
그러므로 비록 죽음이 무관심사라 할지라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네. 정신은 큰 훈련을 통해 단련되어 죽음을 마주하고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견뎌내야 하네. 죽음은 보통 그러는 것보다 더 경멸받아야 하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많은 것을 믿어왔기 때문이네. 그것의 악명을 높이기 위해 많은 이들의 재능이 경쟁해왔네. 지옥의 감옥과 영원한 밤에 짓눌린 지역이 묘사되었는데, 그곳에서는 "플루토의 거대한 문지기가 피비린내 나는 동굴 안에서 반쯤 뜯어먹힌 뼈들 위에 누워 영원히 짖어대며 핏기 없는 그늘들을 공포에 떨게 하네." 설령 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며 죽은 이들에게 두려워할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설득할 때조차, 또 다른 두려움이 슬그머니 찾아드네. 그들은 저승에 있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이나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네.
His adversantibus, quae nobis offundit longa persuasio, fortiter pati mortem quidni gloriosum sit et inter maxima opera mentis humanae? Quae numquam ad virtutem exsurget, si mortem malum esse crediderit; exsurget, si putabit indifferens esse. Non recipit rerum natura, ut aliquis magno animo accedat ad id, quod malum iudicat; pigre veniet et cunctanter. Non est autem gloriosum, quod ab invito et tergiversante fit; nihil facit virtus, quia necesse est.
오랜 확신이 우리에게 드리우는 이 장애물들에 대항하면서, 죽음을 용감하게 견뎌내는 것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으며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죽음을 악이라고 믿는다면 정신은 결코 덕을 향해 솟구쳐 오르지 못할 것이네. 그것이 무관심한 것이라 생각할 때 솟구쳐 오를 것이네. 스스로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어떤 이가 위대한 마음을 품고 다가가는 것을 자연의 섭리는 용납하지 않네. 그는 마지못해 머뭇거리며 갈 것이네. 그러나 내키지 않아 하고 주저하는 자에 의해 행해진 것은 영광스럽지 않네. 덕은 의무감에 마지못해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 때문이네.
- 82.11tanquam misisset
반사대명사 se 등이 생략된 접속법 과거완료형. 마치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유배지로 보낸 것처럼 주체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나타낸다.
- 82.12ita vivam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비굴한 목숨 구걸 대사. 조건적인 제한을 나타내는 ita로 해석되어("만약 이런 식으로 살 수만 있다면 목을 내밀겠소"),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낸다.
- 82.12qui vitae dederetur
dignus 뒤에 오는 특징의 관계절(접속법). 세네카의 강한 반어법적 표현으로, "고결한 죽음을 거부하고 치욕적이고 노예 같은 삶에 내맡겨지기에 마땅한 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