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도덕 편지

§71.28-71.37

덕의 수양자와 육체적 고통에 대한 현자의 이성적 판단

세네카는 덕을 닦는 도중에 있는 자와 완성된 현자의 차이를 논하며, 현자라 할지라도 육체적인 고통의 감각은 피할 수 없지만 진정한 행복은 이성에 기반한 흔들림 없는 판단에 있음을 밝히고 수양을 지속할 것을 촉구한다.

보기 ▾
보기
번역
글꼴
AI ↗
← 이전다음 →
§71.28

​Itaque inchoatus et ad summa procedens cultorque virtutis, etiam si adpropinquat perfecto bono, sed ei nondum summam manum inposuit, ibit interim cessim et remittet aliquid ex intentione mentis. Nondum enim incerta transgressus est, etiamnunc versatur in lubrico. Beatus vero et virtutis exactae1 tunc se maxime amat, cum fortissime expertus est, et metuenda ceteris, si alicuius honesti officii pretia sunt, non tantum fert, sed amplexatur multoque audire mavult "tanto melior" quam "tanto felicior."

그러므로 아직 미완성이고 최고를 향해 나아가는 덕의 수양자는, 비록 완성된 선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거기에 마지막 손길(마무리)을 대지 못했기에, 그동안 뒤로 물러서며 마음의 긴장을 어느 정도 늦추게 될 것이네. 왜냐하면 그는 아직 불확실한 영역을 넘어선 것이 아니며, 여전히 미끄러운 곳에 처해 있기 때문이네. 그러나 행복하고 덕이 완성된 사람은 스스로가 가장 용감하게 시련을 겪었을 때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다른 이들이 두려워하는 일도 그것이 어떤 고결한 의무의 대가라면 단지 견뎌낼 뿐만 아니라 포용하고, "그만큼 더 낫다"라는 말을 듣는 편을 "그만큼 더 행운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네.

§71.29

​Venio nunc illo, quo me vocat expectatio tua. Ne extra rerum naturam vagari virtus nostra videatur, et tremet sapiens et dolebit et expallescet. Hi enim omnes corporis sensus sunt Ubi ergo calamitas, ubi illud malum verum est? Illic scilicet, si ista animum detrahunt, si ad confessionem servitutis adducunt, si illi paenitentiam sui faciunt.

이제 그대의 기대가 나를 부르는 저곳으로 나아가겠네. 우리의 덕이 자연의 본성 밖에서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현자 역시 떨고 아파하며 창백해질 것이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육체의 감각이기 때문이네. 그렇다면 재앙은 어디에 있으며, 저 참된 악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거기에 있네, 만약 저것들이 마음을 끌어내리고, 예속의 고백으로 인도하며, 자신을 후회하게 만든다면 말이네.

§71.30

​Sapiens quidem vincit virtute fortunam, at multi professi sapientiam levissimis nonnumquam minis exterriti sunt. Hoc loco nostrum vitium est, qui2 idem a sapiente exigimus et a proficiente. Suadeo adhuc mihi ista, quae laudo, nondum persuadeo. Etiam si persuasissem, nondum tam parata haberem aut tam exercitata, ut ad omnes casus procurrerent.

현자는 참으로 덕으로써 운명을 이겨내지만, 지혜를 공언하는 많은 이들은 때때로 극히 가벼운 위협에도 겁을 먹곤 하네. 이 점이 우리의 과오이니, 우리는 현자와 수양 중인 자에게 똑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네. 나는 내가 칭찬하는 저 일들을 아직 스스로에게 권하고는 있으나, 아직 설득시키지는 못했네. 비록 설득시켰다 하더라도, 모든 돌발 상황에 맞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그것들을 준비해 두거나 단련해 두지는 못했을 것이네.

§71.31

​Quemadmodum lana quosdam colores semel ducit, quosdam nisi saepius macerata et recocta non perbibit; sic alias disciplinas ingenia, cum accepere, protinus praestant, haec, nisi alte descendit et diu sedit et animum non coloravit, sed infecit,3 nihil ex his, quae promiserat, praestat.

양모가 어떤 색깔은 단번에 들이지만, 어떤 색깔은 여러 번 담그고 다시 삶지 않으면 완전히 빨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정신도 다른 학문은 받아들이면 즉시 발휘하지만, 이 지혜의 학문은 깊이 내려가 오랫동안 머물러 마음을 단지 채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물들이지 않는 한, 약속했던 것들 중 아무것도 발휘하지 못하네.

§71.32

​Cito hoc potest tradi et paucissimis verbis: unum bonum esse virtutem, nullum certe sine virtute, et ipsam virtutem in parte nostri meliore, id est rationali, positam. Quid erit haec virtus? Iudicium verum et inmotum. Ab hoc enim impetus venient mentis, ab hoc omnis species, quae impetum movet, redigetur ad liquidum.

이것은 신속하게 그리고 아주 적은 말로 전달될 수 있네. 유일한 선은 덕이며, 덕 없이는 분명 어떤 선도 없다는 것, 그리고 덕 자체는 우리의 더 나은 부분, 즉 이성적인 부분에 놓여 있다는 것이네. 이 덕이란 무엇이겠는가? 참되고 흔들림 없는 판단이네. 왜냐하면 이 판단으로부터 마음의 충동이 생겨날 것이며, 충동을 일으키는 모든 외적 인상도 이 판단에 의해 명확하게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네.

§71.33

​Huic iudicio consentaneum erit omnia, quae virtute contacta sunt, et bona iudicare et inter se paria. Corporum autem bona corporibus quidem bona sunt, sed in totum non sunt bona. His pretium quidem erit aliquod, ceterum dignitas non erit; magnis inter se intervallis distabunt; alia minora, alia maiora erunt.

이 판단에 일치하여, 덕으로 닿은 모든 것을 선이라 판단하고 서로 동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조화로울 것이네. 반면에 육체의 선들은 육체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이지만, 전체로서는 선이 아니네. 이것들에도 분명 어떤 가치는 있겠지만, 고귀함은 없을 것이네. 그것들은 서로 큰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을 것이며, 어떤 것은 더 작고 어떤 것은 더 클 것이네.

§71.34

​Et in ipsis sapientiam sectantibus magna discrimina esse fateamur necesse est. Alius iam in tantum profecit, ut contra fortunam audeat adtollere oculos, sed non pertinaciter, cadunt enim nimio splendore praestricti; alius in tantum, ut possit cum illa conferre vultum, nisi iam pervenit ad summum et fiduciae plenus est.

그리고 지혜를 좇는 이들 자체 내에서도 큰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하네. 어떤 이는 이미 운명을 향해 눈을 치켜뜰 수 있을 만큼 진보했으나 끈기 있게 하지는 못하니, 그 눈이 지나친 눈부심에 가려져 떨어지기 때문이네. 다른 이는 운명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진보했으나, 그가 이미 최고에 도달하여 확신에 차 있는 것이 아니라면 완전히 그렇지는 못하네.

§71.35

​Inperfecta necesse est labent et modo prodeant, modo sublabantur aut succidant. Sublabentur autem, nisi ire et niti perseveraverint; si quicquam ex studio et fideli intentione laxaverint, retro eundum est. Nemo profectum ibi invenit, ubi reliquerat. Instemus itaque et perseveremus.

미완성인 것들은 미끄러지기 마련이어서,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미끄러져 떨어지거나 꺾이게 되네. 그리고 나아가고 노력하기를 지속하지 않는다면 미끄러져 떨어질 것이네. 만약 열의와 충실한 집중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뺀다면 뒤로 물러서야 하네. 아무도 자신이 그만둔 자리에서 진보를 다시 발견하지 못하네. 그러므로 우리는 다그치고 인내하세.

§71.36

​Plus, quam profligavimus, restat, sed magna pars est profectus velle proficere. Huius rei conscius mihi sum; volo et mente tota volo. Te quoque instinctum esse et magno ad pulcherrima properare impetu video, Properemus; ita demum vita beneficium erit. Alioqui mora est, et quidem turpis inter foeda versantibus. Id agamus, ut nostrum omne tempus sit. Non erit autem, nisi prius nos nostri esse4 coeperimus.

우리가 이미 극복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남아 있으나, 진보하고자 바라는 것 자체가 진보의 큰 부분이라네. 나는 이 점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네. 나는 바라고 있으며, 온 마음으로 바라고 있네. 그대 역시 고무되어 지극히 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큰 기세로 서두르고 있음을 내가 보고 있네. 서두르세. 그래야만 비로소 삶은 은혜가 될 것이네. 그렇지 않으면 지체될 뿐이며, 참으로 더러운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지체라네. 우리의 모든 시간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힘쓰세. 그러나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되기 시작하지 않는 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네.

§71.37

​Quando continget contemnere utramque fortunam, quando continget omnibus oppressis adfectibus et sub arbitrium suum adductis hanc vocem emittere "vici"? Quem vicerim quaeris? Non Persas nec extrema Medorum nec si quid ultra Dahas bellicosum iacet, sed avaritiam, sed ambitionem, sed metum mortis, qui victores gentium vicit. VALE.

두 가지 운명을 모두 경멸하는 일이 언제쯤 일어날 것인가?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의 결정권 아래 둔 뒤에 "내가 이겼다"라고 이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언제쯤 일어날 것인가? 내가 누구를 이겼는지 묻는가? 페르시아인도 아니고, 미디아의 변방도 아니며, 다하인들 너머에 있는 어떤 호전적인 민족도 아니네. 오직 탐욕을, 야심을, 그리고 만국의 정복자들을 이긴 죽음의 공포를 이겼네. 잘 있게.

구문 주해4건
  1. 71.28virtutis exactae

    명사 beatus를 수식하는 '성질의 속격'(genitive of quality)으로, 덕이 완성에 이른 현자를 가리킨다.

  2. 71.30qui

    관계대명사 qui의 선행사는 앞의 소유형용사 nostrum(우리의)에 문맥상 포함되어 있는 인칭대명사 nos(우리)이다. 따라서 선행사와 성·수를 일치시키며 관계절 내의 1인칭 복수 동사 exigimus를 이끈다.

  3. 71.31non coloravit, sed infecit

    colorare는 '표면을 채색하다'라는 뜻인 반면, inficere는 '(속까지) 물들이다, 스며들게 하다'를 의미하여, 지혜의 가르침이 정신에 표면적인 영향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 깊숙이 철저히 침투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4. 71.36nostri esse

    nostri는 인칭대명사 nos의 속격(또는 소유형용사 noster의 중성 속격의 대명사적 용법)이다. '자기 자신의 소유에 속하다', 즉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배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소유의 속격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번역: Gemini 3.5 Flash (2026-05-25 공개)urn:cts:latinLit:phi1017.phi015.humanitext-lat2:71.28-7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