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Seneca, Lucius Annaeus. Ad Lucilium Epistulae Morales, Vol 1-3. Gummere, Richard Mott,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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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상황에 따른 유연한 계획의 필요성을 조언하면서도, 인생의 모든 행위가 유일한 최고선인 덕과 일치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여, 참된 덕은 외적인 상황이나 세속적인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논한다.
Subinde me de rebus singulis consulis oblitus vasto nos mari dividi.1 Cum magna pars consilii sit in tempore, necesse est evenire, ut de quibusdam rebus tunc ad te perferatur sententia mea, cum iam contraria potior est. Consilia enim rebus aptantur. Res nostrae feruntur, immo volvuntur. Ergo consilium nasci sub diem debet; et hoc quoque nimis tardum est; sub manu, quod aiunt, nascatur. Quemadmodum autem inveniatur, ostendam.
광대한 바다가 우리를 갈라놓고 있음을 잊은 채, 그대는 때때로 내게 개별적인 일들에 대해 조언을 구하곤 하네. 조언의 큰 부분이 시기에 달려 있기에,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그 반대의 방책이 더 나은 상태가 되었을 때에야 나의 의견이 그대에게 전달되는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네. 계획이란 상황에 맞추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네. 우리의 일들은 흘러가며, 아니, 급격히 굴러가고 있네. 그러므로 계획은 바로 그날그날 태어나야 하며, 이조차도 너무 늦은 것이니, 사람들이 말하듯 바로 손닿는 곳에서 태어나야 하네.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내 보여주겠네.
Quotiens, quid fugiendum sit aut quid petendum, voles scire, ad summum bonum, propositum totius vitae tuae, respice. Illi enim consentire debet, quicquid agimus; non disponet singula, nisi cui iam vitae suae summa proposita est. Nemo, quamvis paratos habeat colores, similitudinem reddet, nisi iam constat, quid velit pingere. Ideo peccamus, quia de partibus vitae omnes deliberamus, de tota nemo deliberat.
무엇을 피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고 싶을 때마다, 그대 인생 전체의 목표인 최고선을 바라보게나.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그것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네. 자신의 인생 전체의 목표가 이미 세워져 있는 자가 아니라면 개별적인 일들을 계획할 수 없네. 아무리 물감을 준비해 두었을지라도,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 이미 결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 누구도 대상을 닮은 그림을 그려내지 못할 것이네. 우리가 잘못을 범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부분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만,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네.
Scire debet quid petat ille, qui sagittam vult mittere, et tunc derigere ac moderari manu telum. Errant consilia nostra, quia non habent, quo derigantur. Ignorant,2 quem portum petat, nullus suus ventus est. Necesse est multum in vita nostra casus possit, quia vivimus casu.
화살을 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알아야 하며, 그런 다음 손으로 무기를 조준하고 제어해야 하네. 우리의 계획들이 방황하는 것은 지향할 표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네. 어느 항구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되지 못하네. 우리 삶에서 우연이 큰 힘을 가지는 것은 필연적인데, 우리가 우연에 의지해 살아가기 때문이라네.
Quibusdam autem evenit, ut quaedam scire se nesciant. Quemadmodum quaerimus saepe eos, cum quibus stamus, ita plerumque finem summi boni ignoramus adpositum. Nec multis verbis nec circumitu longo, quod sit summum bonum, colliges; digito, ut ita dicam, demonstrandum est nec in multa spargendum. Quid enim ad rem pertinet in particulas illud diducere, cum possis dicere: summum bonum est, quod honestum est? Et quod magis admireris: unum bonum est, quod honestum est, cetera falsa et adulterina bona sunt.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네. 우리가 종종 자신과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대개 우리 곁에 아주 가깝게 놓인 최고선의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있네. 최고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말도, 긴 우회로도 필요치 않고 귀결될 수 있으니, 말하자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야 할 일이며 여러 갈래로 흩뜨려서는 안 되네. "최고선이란 고결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미세한 부분들로 나누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대가 더 놀라워할 것은, 선이란 오직 하나, 고결한 것뿐이며, 다른 것들은 가짜이자 모조품인 선에 불과하다는 점이라네.
Hoc si persuaseris tibi et virtutem adamaveris, amare enim parum est, quicquid illa contigerit, id tibi, qualecumque aliis videbitur, faustum felixque erit. Et torqueri, si modo iacueris ipso torquente securior, et aegrotare, si non male dixeris fortunae, si non cesseris morbo, omnia denique, quae ceteris videntur mala, et mansuescent et in bonum abibunt, si super illa eminueris. Hoc liqueat, nihil esse bonum nisi honestum, et omnia incommoda suo iure bona vocabuntur, quae modo virtus honestaverit.
이 점을 스스로 확신하고 덕을 깊이 사랑한다면(단지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네), 덕이 가 닿는 모든 것은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대에게 상서롭고 행복한 일이 될 것이네. 고문을 당하는 것도(그대가 고문하는 자보다 더 평온하게 누워만 있다면), 병에 걸리는 것도(그대가 운명을 저주하지 않고 병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요컨대 타인들에게는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대가 그것들 위로 우뚝 솟아오른다면, 결국 길들여져 선으로 바뀔 것이네. 고결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세. 그리하면 모든 불편한 일들도 오직 덕이 그것을 고결하게 만드는 한, 당연히 선이라 불리게 될 것이네.
Multis videmur maiora promittere quam recipit humana condicio; non inmerito. Ad corpus enim respiciunt. Revertantur ad animum; iam hominem deo metientur. Erige te, Lucili virorum optime, et relinque istum ludum literarium philosophorum, qui rem magnificentissimam ad syllabas vocant, qui animum minuta docendo demittunt et conterunt; fies similis illis, qui invenerunt ista, non qui docent et id agunt, ut philosophia potius difficilis quam magna videatur.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인간의 처지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들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당연한 일이네. 그들은 육체를 바라보기 때문이라네. 그들이 정신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때서야 인간을 신의 척도로 재어 보게 될 것이네. 사내들 중 가장 뛰어난 루킬리우스여,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가장 장엄한 일을 음절 단위로 끌어내려 미세한 것들을 가르침으로써 정신을 비하하고 마모시키는 저 철학자들의 유치한 문자 놀이 교실을 떠나게나. 그대는 이 미세한 것들을 가르치며 철학이 위대하기보다는 난해해 보이도록 애쓰는 자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발견해 낸 자들을 닮게 될 것이네.
Socrates qui totam philosophiam revocavit ad mores et hanc summam dixit esse sapientiam, bona malaque distinguere, "sequere," inquit, "illos, si quid apud te habeo auctoritatis, ut sis beatus, et te alicui stultum videri sine. Quisquis volet, tibi contumeliam faciat et iniuriam, tu tamen nihil patieris, si modo tecum erit virtus. Si vis," inquit, "beatus esse, si fide bona vir bonus, sine contemnat te aliquis.3" Hoc nemo praestabit, nisi qui omnia bona exaequaverit, quia nec bonum sine honesto est et honestum in omnibus par est. "
철학 전체를 인간의 품행으로 되돌려 놓고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네. "만일 내게 그대에 대한 어떤 권위가 있다면, 그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들을 따르고, 누군가에게 그대가 어리석은 자로 보이도록 내버려 두게나. 원하는 자는 누구든 그대에게 모욕과 부당함을 가하게 두게나. 하지만 덕이 그대와 함께하는 한, 그대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네. 만약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가 말하길, "진정으로 신의가 두터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누군가 그대를 경멸하도록 내버려 두게나." 모든 선을 동등하게 여기는 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이를 보증하지 못할 것이니, 고결함이 없는 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고결함은 모든 것 속에서 동등하기 때문이라네.
Quid ergo? Nihil interest inter praeturam Catonis et repulsam? Nihil interest, utrum Pharsalica acie Cato vincatur an vincat? Hoc eius bonum, quo victis partibus non potest vinci,4 par erat illi bono, quo victor rediret in patriam et conponeret pacem?" Quidni par sit? Eadem enim virtute et mala fortuna vincitur et ordinatur bona. Virtus autem non potest maior aut minor fieri; unius staturae est."
"그렇다면 어떻겠는가? 카토의 법무관 직위와 그 낙선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단 말인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토가 패배하느냐 승리하느냐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단 말인가? 자기 진영이 패배하더라도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그의 이 선은, 승리자로서 조국에 돌아와 평화를 정착시켰을 때 가졌을 저 선과 동등하단 말인가?" 어찌 동등하지 않겠는가? 동일한 덕에 의해 불행은 극복되고 행운은 올바르게 인도되기 때문이라네. 하지만 덕은 더 커지거나 작아질 수 없으며, 오직 하나의 크기(높이)를 가질 뿐이라네.
- 71.1oblitus vasto nos mari dividi
디포넌트 동사 obliviscor의 완료분사 oblitus가 주동사 consulis의 주어(2인칭 단수)와 일치하며, 뒤에 대격+부정사 구문인 vasto nos mari dividi(nos는 대격 주어, dividi는 수동 부정사)를 취하여 분사 구문을 이루고 있다.
- 71.3Ignorant
여러 판본에서 이를 ignoranti(ignorans의 여격 단수형, '~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로 수정하여 읽는다. 본문의 ignorant(3인칭 복수)는 문법적 연결이 어색하지만, 문맥상 '자신이 향하는 항구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의 의미를 전달하므로 여격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71.7sine contemnat te aliquis
동사 sinere(허락하다)의 2인칭 단수 명령형 sine 뒤에 접속사 ut이 생략된 채 접속법 현재 contemnat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이는 '누군가 그대를 경멸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허용 및 양보를 나타내는 명령 구조이다.
- 71.8quo victis partibus non potest vinci
탈격 관계대명사 quo는 수단이나 원인('그것에 의해')을 가리킨다. 구문 내에 삽입된 victis partibus는 명사와 분사의 탈격 독립 구문('그의 진영이 패배했을 때조차')으로, 외적인 정세의 패배 속에서도 카토 개인의 덕은 결코 굴복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번역: Gemini 3.5 Flash (2026-05-25 공개) · 수정 이력 (1건, 최근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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