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Seneca, Lucius Annaeus. Ad Lucilium Epistulae Morales, Vol 1-3. Gummere, Richard Mott,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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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는 갑자기 찾아온 자신의 만성 질환(호흡 곤란)에 대해 설명하며 이를 '죽음의 연습'이라고 부른다. 그는 죽음이란 태어나기 전과 다름없는 '존재하지 않음'의 상태일 뿐임을 성찰하며, 현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필연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Longum mihi commeatum dederat mala valitudo; repente me invasit. "Quo genere? "inquis. Prorsus merito interrogas; adeo nullum mihi ignotum est. Uni tamen morbo quasi adsignatus sum,1 quem quare Graeco nomine appellem nescio; satis enim apte dici suspirium potest. Brevis autem valde et procellae similis est impetus; intra horam fere desinit.
지병이 나에게 긴 휴가를 주었었으나, 갑자기 나를 덮쳤네. "어떤 종류인가?" 하고 자네는 묻는군. 전적으로 물을 만한 질문이네. 그만큼 나에게 낯선 병이란 없으니 말일세. 하지만 나는 마치 단 하나의 병에 전속으로 지정된 것만 같은데, 그 병을 왜 그리스어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네. '호흡 곤란'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절하기 때문이네. 그 발작은 매우 짧고 폭풍과도 같아서, 대개 한 시간 이내에 끝나네.
Quis enim diu exspirat? Omnia corporis aut incommoda aut pericula per me transierunt; nullum mihi videtur molestius. Quidni? Aliud enim quicquid est, aegrotare est, hoc animam egerere. Itaque medici hanc "meditationem mortis "vocant. Faciet enim aliquando spiritus ille, quod saepe conatus est.
도대체 누가 오랫동안 숨을 몰아쉴 수 있겠는가? 육체의 모든 불편함과 위험이 나를 거쳐 갔지만,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는 듯하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모든 병은 앓는 것이지만, 이것은 영혼을 뱉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네. 그리하여 의사들은 이를 '죽음의 연습'이라 부르네. 결국 저 숨결은 자신이 그토록 자주 시도했던 일을 언젠가는 완수할 것이기 때문이네.
Hilarem me putas haec tibi scribere, quia effugi? Tam ridicule facio, si hoc fine quasi bona valitudine delector, quam ille, quisquis vicisse se putat, cum vadimonium distulit.2 Ego vero et in ipsa suffocatione non desii cogitationibus laetis ac fortibus adquiescere.
내가 발작을 모면했다고 해서 자네에게 이 글을 유쾌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내가 이번 발작의 끝을 마치 건강을 되찾은 양 기뻐한다면, 나는 출두 기일이 연기되었을 뿐인데 자신이 소송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는 셈이라네. 하지만 나는 그 질식의 순간 속에서도 즐겁고 강인한 생각에 안주하기를 멈추지 않았네.
" Quid hoc est? "inquam. "Tam saepe mors experitur me? Faciat; ego illam diu expertus sum." "Quando?" inquis. Antequam nascerer. Mors est non esse; id quale sit, iam scio. Hoc erit post me, quod ante me fuit. Si quid in hac re tormenti est, necesse est et fuisse, antequam prodiremus in lucem; atqui nullam sensimus tunc vexationem.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나는 말했네. "죽음이 나를 이토록 자주 시험하는가? 시험하라지. 나는 이미 오랫동안 죽음을 겪어보았으니." "언제 말인가?" 자네는 묻는군.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이 어떠한지 나는 이미 알고 있네. 내 뒤에 올 상태는 내 앞에 있었던 상태와 같을 것이네. 만약 이 일에 어떤 고통이 있다면, 우리가 빛 속으로 나오기 전에도 고통이 있었어야 마땅하네. 하지만 우리는 그때 아무런 괴로움도 느끼지 못했네.
Rogo, non stultissimum dicas, si quis existimet lucernae peius esse, cum extincta est, quam antequam accenditur? Nos quoque et extinguimur et accendimur; medio illo tempore aliquid patimur, utrimque vero alta securitas est. In hoc enim, mi Lucili, nisi fallor, erramus, quod mortem iudicamus sequi, cum illa et praecesserit et secutura sit. Quicquid ante nos fuit, mors est. Quid enim refert, non incipias an desinas, cum utriusque rei hic sit effectus, non esse?
자네에게 묻겠네, 등불이 꺼진 뒤의 상태가 켜지기 전의 상태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극히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우리 또한 꺼지기도 하고 켜지기도 하네. 그 중간의 시간에 우리는 무언가를 겪지만, 양쪽 모두에는 깊은 평온이 있네. 왜냐하면, 나의 사랑하는 루킬리우스여,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죽음이 삶 뒤에 오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점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네. 죽음은 삶에 앞서기도 했고 뒤에 오기도 할 것인데 말이네. 우리 앞에 있었던 모든 것은 죽음이라네. 시작하지 않는 것과 끝나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두 일의 결과는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말이네.
His et eiusmodi exhortationibus, tacitis scilicet, nam verbis locus non erat, adloqui me non desii. Deinde paulatim suspirium illud, quod esse iam anhelitus coeperat, intervalla maiora fecit et retardatum est ac remansit. Nec adhuc, quamvis desierit, ex natura fluit spiritus; sentio haesitationem quandam eius et moram. Quomodo volet, dummodo non ex animo suspirem.3
이러한 종류의 격려를, 물론 말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건넸네. 그러자 점차 이미 단순한 '헐떡임'이 되기 시작한 그 호흡 곤란의 간격이 넓어지고 늦춰지다가 멈추었네. 발작은 멈추었으나 아직 숨결이 자연스럽게 흐르지는 않네. 나는 호흡의 어떤 걸림과 지체를 느끼고 있네. 숨결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라지, 내가 마음 깊이 탄식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네.
Hoc tibi de me recipe; non trepidabo ad extrema, iam praeparatus sum, nihil cogito de die toto. Illum tu lauda et imitare, quem non piget mori, cum iuvet vivere. Quae est enim virtus cum eiciaris exire? Tamen est et hic virtus; eicior quidem, sed tanquam exeam. Et ideo numquam eicitur sapiens, quia eici est inde expelli, unde invitus recedas; nihil invitus facit sapiens, necessitatem effugit, quia vult quod coactura est.4 VALE.
나에 대해 이 점을 마음에 새겨두게나. 나는 종말의 순간에 당황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준비가 되어 있고, 하루의 모든 시간 속에서 죽음에 대해 염려하지 않네. 살아 있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죽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저 사람을 칭찬하고 모방하게나. 쫓겨날 때 밖으로 나가는 것에 무슨 덕이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도 덕은 있네. 나는 참으로 쫓겨나는 것이지만, 마치 스스로 걸어 나가는 것처럼 나가는 것이니 말이네. 그리하여 현자는 결코 쫓겨나지 않네. 쫓겨난다는 것은 자기가 원치 않는데도 어떤 곳에서 쫓겨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네. 현자는 원치 않으면서 하는 일이 없으며, 자신을 강제하려는 일을 스스로 원하기에 필연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네. 잘 있게나.
- 54.1adsignatus sum
특정 노예가 주인에게 배정되거나 재산이 배분되는 법적 절차를 뜻하는 법률 용어 adsignare에서 유래한 비유이다. 세네카가 평생 동안 이 특정한 만성 질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54.3cum vadimonium distulit
로마 민사 소송에서 피고의 법정 출두 보증 기일(vadimonium)이 연기(distulit)된 것에 대한 언급이다. 단지 출두일이 미뤄졌을 뿐인데 소송 자체에서 승소(vicisse)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예로 들어, 질병의 일시적인 완화를 진정한 건강을 되찾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의 우스꽝스러움을 대조하고 있다.
- 54.6dummodo non ex animo suspirem
신체적 증상인 '호흡 곤란(suspirium)'과 정신적인 '슬픔의 탄식(suspirare)'을 연결한 언어유희이다. 앞 문장의 물리적인 호흡(spiritus)의 불안정을 받아, '나의 폐(숨결)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나, 나의 마음(animus)이 비탄에 젖어 탄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스토아학파적 태도를 드러낸다.
- 54.7necessitatem effugit, quia vult quod coactura est
미래 능동 분사 coactura(necessitas가 생략된 형태)는 '(필연성이) 강제하려는 것'을 뜻한다. 현자가 운명의 강제력(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필연성이 자신에게 강요하게 될 바로 그 일을 자기 스스로 미리 원하기(vult) 때문이라는 스토아학파의 자유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번역: Gemini 3.5 Flash (2026-05-25 공개) · 수정 이력 (1건, 최근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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