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Seneca, Lucius Annaeus. Ad Lucilium Epistulae Morales, Vol 1-3. Gummere, Richard Mott,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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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을 운명의 육체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과도한 욕망으로 삶을 낭비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호라티우스의 풍자를 인용하여 현자를 제외한 범인들이 자기 일관성 없이 요동치고 있음을 폭로한다.
Nunc de capite, nunc ' de ventre, nunc de pectore ac faucibus querimur. Alias nervi nos, alias pedes vexant, nunc deiectio, nunc destillatio, aliquando superest sanguis, aliquando deest; hinc atque illinc temptamur et expellimur; hoc evenire solet in alieno habitantibus.
이제 우리는 머리에 대해, 이제는 배에 대해, 이제는 가슴과 목구멍에 대해 불평하네. 어떤 때는 신경이, 어떤 때는 발이 우리를 괴롭히고, 이제는 설사가, 이제는 콧물이, 때로는 피가 넘쳐나고, 때로는 부족하네. 이리저리 우리는 공격을 받고 쫓겨나네. 이는 타인의 집에 사는 자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일세.
At nos corpus tam putre sortiti nihilominus aeterna proponimus et in quantum potest aetas humana protendi, tantum spe occupamus, nulla contenti pecunia, nulla potentia. Quid hac re fieri inpudentius, quid stultius potest? Nihil satis est morituris, immo morientibus;1 cotidie enim propius ab ultimo stamus, et illo, unde nobis cadendum est, hora nos omnis inpellit. vide in quanta caecitate mens nostra sit!
하지만 우리는 이토록 썩기 쉬운 육체를 할당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것을 계획하며, 인간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는 만큼의 영역을 희망으로 선점하고, 그 어떤 돈에도, 그 어떤 권력에도 만족하지 못하네. 이보다 더 뻔뻔스럽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죽을 운명의 자들에게, 아니 오히려 지금 죽어가고 있는 자들에게 충분한 것은 아무것도 없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종말에 더 가까이 서 있으며, 우리가 떨어져야만 하는 그곳으로 매 시간 우리를 밀어붙이기 때문이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큰 눈멂 속에 있는지 보게나!
Hoc quod futurum dico, cum maxime fit, et pars eius magna iam facta est, nam quod viximus.2 Erramus autem qui ultimum timemus diem, cum tantumdem in mortem singuli conferant. Non ille gradus lassitudinem facit, in quo deficimus, sed ille profitetur.3 Ad mortem dies extremus pervenit, accedit omnis. Carpit nos illa, non corripit. Ideo magnus animus conscius sibi melioris naturae dat quidem operam, ut in hac statione qua positus est, honeste se atque industrie gerat, ceterum nihil horum, quae circa sunt, suum iudicat, sed ut commodatis utitur, peregrinus et properans.
내가 앞으로 올 것이라 말하는 이 일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의 큰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네. 우리가 이미 살아온 삶이[죽음에 속하기] 때문이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니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네. 우리 각자가 매일 죽음에 똑같은 몫을 보태고 있는데도 말이네. 우리가 쓰러지는 저 발걸음이 피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발걸음이 피로를 선언하는 것이라네. 마지막 날이 죽음에 도달하지만, 모든 날이 죽음에 다가가고 있네. 죽음은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지, 단번에 낚아채는 것이 아닐세. 그러므로 더 나은 본성을 자각하고 있는 위대한 정신은 자신이 배치된 이 초소에서 고결하고 근면하게 처신하도록 힘쓰기는 하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 중 어느 것도 자신의 소유라 판단하지 않고, 빌려온 물건처럼 사용하며 나그네이자 길을 서두르는 자처럼 행동하네.
Cum aliquem huius videremus constantiae, quidni subiret nos species non usitatae indolis? Utique si hanc, ut dixi, magnitudinem veram esse ostendebat aequalitas. vero tenor permanet, falsa non durant. Quidam alternis Vatinii, alternis Catones sunt; et modo parum illis severus est Curius, parum pauper Fabricius, parum frugi et contentus vilibus Tubero; modo Licinum divitiis, Apicium cenis, Maecenatem deliciis provocant.
우리가 이러한 항심을 지닌 누군가를 볼 때, 예사롭지 않은 기질의 모습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지 않겠는가? 더구나 내가 말했듯이, 일관성이 이 위대함이 참된 것임을 보여준다면 참으로 그러할 걸세. 진실한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지만, 거짓된 것은 오래가지 못하네. 어떤 이들은 번갈아 가며 바티니우스가 되었다가 카토가 된다네. 그리하여 어떤 때는 그들에게 쿠리우스는 덜 엄격하고, 파브리키우스는 덜 가난하며, 투베로는 덜 검소하고 값싼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때는 리키누스에게는 부로, 아피키우스에게는 만찬으로, 마에케나스에게는 사치로 도전하네.
Maximum indicium est malae mentis fluctuatio et inter simulationem virtutum amoremque vitiorum adsidua iactatio. Aliquis "habebat saepe ducentos, Saepe decem servos; modo reges atque tetrarchas, Omnia magna loquens, modo "sit mihi mensa tripes et Concha salis puri, toga quae defendere frigus Quamvis crassa queat"; decies centena dedisses4 Huic parco, paucis contento; quinque diebus Nil erat."
나쁜 마음의 가장 큰 증거는 흔들림이며, 미덕을 꾸며내는 것과 악덕을 사랑하는 것 사이의 끊임없는 요동이라네. 어떤 이는 "종종 이백 명의 노예를, 종종 열 명의 노예를 거느렸네. 어떤 때는 왕들과 사분영주들을 이야기하며 모든 것을 거창하게 말하다가도, 어떤 때는 ‘세 발 달린 탁자와 깨끗한 소금을 담은 조개껍데기, 아무리 거칠어도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토가만 내게 있으면 족하리’라고 말하네. 만약 자네가 이 검소하고 적은 것에 만족하는 자에게 백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주었다면, 닷새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걸세."
Homines isti tales sunt, qualem hunc describit Horatius Flaccus, numquam eundem, ne similem quidem sibi; adeo in diversum aberrat. Multos dixi? Prope est, ut omnes sint. Nemo non cotidie et consilium mutat et votum. Modo uxorem vult habere, modo amicam, modo regnare vult, modo id agit, ne quis sit officiosior servus, modo dilatat se usque ad invidiam, modo subsidit et contrahitur infra humilitatem vere iacentium, nunc pecuniam spargit, nunc rapit.
저런 부류의 인간들은 호라티우스 플라쿠스가 묘사하는 이 인물과 같아서, 결코 한결같지 않고 심지어 자신과 닮지도 않았네. 그토록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빗나가는 것이네. 내가 ‘많은 이들’이라고 말했는가?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하네. 매일 계획도 소원도 바꾸지 않는 사람이 없네. 어떤 때는 아내를 얻고 싶어 하다가도, 어떤 때는 애인을 원하고, 어떤 때는 지배하려 하다가도, 어떤 때는 그 어떤 노예보다도 충성스럽게 굴려고 노력하며, 어떤 때는 부러움을 살 정도로 자신을 확장했다가도, 어떤 때는 진정으로 땅에 쓰러진 자들의 비천함보다 더 아래로 침잠하고 오그라들며, 이제는 돈을 흩뿌리다가도 이제는 빼앗네.
Sic maxime coarguitur animus inprudens; alius prodit atque alius et, quo turpius nihil iudico, impar sibi est. Magnam rem puta unum hominem agere.5 Praeter sapientem autem nemo unum agit, ceteri multiformes sumus. Modo frugi tibi videbimur et graves, modo prodigi et vani. Mutamus subinde personam et contrariam ei sumimus, quam exuimus. Hoc ergo a te exige, ut, qualem institueris praestare te, talem usque ad exitum serves. Effice ut possis laudari, si minus, ut adgnosci. De aliquo, quem here vidisti, merito dici potest: "hic qui est? "Tanta mutatio est. VALE.
이처럼 어리석은 정신은 가장 크게 폭로되네. 이 사람 저 사람이 번갈아 나타나고, 내가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없다고 판단하는 바인데,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않네. 한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큰 일로 여기게나. 그러나 현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한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며, 나머지 우리는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네. 어떤 때는 자네에게 검소하고 진중해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방탕하고 허황해 보일 걸세. 우리는 끊임없이 가면을 바꾸고, 방금 벗어던진 가면과 정반대의 가면을 쓰네. 그러므로 자네는 자신에게 이것을 요구하게나. 자네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든 간에, 그런 사람으로 종말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지켜내라고 말이네. 칭송받을 수 있게 하고, 정 안 된다면 최소한 알아볼 수라도 있게 하게나. 어제 자네가 본 누군가에 대해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말이 당연하게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변화가 심하니 말이네. 잘 지내게나.
- 120.17morituris, immo morientibus
미래분사 형태의 moriturus(죽을 운명의)에서 현재분사 moriens(죽어가는)로의 환언. 문법적 형태의 대조를 통해, 죽음을 단순히 미래의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세네카의 죽음관을 강조한다.
- 120.18nam quod viximus
관계대명사절 quod viximus(우리가 이미 살아온 부분)가 주어 역할을 한다. 문맥상 '[이미 죽음에 속한다 / 과거의 일이다]'라는 생략을 보충하여 해석한다. 앞서 나온 "pars eius magna iam facta est"(그것의 큰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를 받아, 과거의 삶이 이미 죽음의 영역에 들어가 있음을 나타낸다.
- 120.18non ille gradus lassitudinem facit, in quo deficimus, sed ille profitetur
gradus가 명사이다. 우리가 쓰러지는 그 마지막 한 걸음 자체가 피로를 만드는 것(facit)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누적된 피로를 '공표하는(profitetur)' 것이라는 논리이다. profitetur는 '드러내다, 고백하다'의 뜻이다.
- 120.20decies centena dedisses
접속법 과거완료 dedisses(그대가 주었더라면)를 사용한 가정 조건절(접속법 독립 용법, 조건절 대용). decies centena는 decies centena milia sestertium의 생략형으로, 고대 로마에서 '백만(1,000,000)' 세스테르티우스를 나타내는 관용 표현이다.
- 120.22unum hominem agere
관용적 표현인 agere personam(역할을 연기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기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일관되게 행동하다'를 의미한다. 다양한 역할(multiformes)을 차례로 연기하는 범인들과 대조적으로, 현자는 항상 '한 사람의 역할'(unum agit)을 계속해서 연기한다는 윤리적 목표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