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본
- Seneca, Lucius Annaeus. Ad Lucilium Epistulae Morales, Vol 1-3. Gummere, Richard Mott, edito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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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부에 대한 갈망이 가져오는 비참함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예 등을 통해 보여주며, 자연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욕망에만 따름으로써 인간은 진정한 내면의 충족과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한다.
Inventus est qui concupisceret1 aliquid post omnia; tanta est caecitas mentium et tanta initiorum suorum unicuique, cum processit, oblivio. Ille modo ignobilis anguli non sine controversia dominus tacto fine terrarum per suum rediturus orbem tristis est.
모든 것을 다 가진 후에도 무언가를 갈망하는 자가 발견되었네. 마음의 소경됨이 이토록 크고, 앞으로 나아갔을 때에 제각기 자신의 시작을 잊어버리는 망각 또한 이토록 크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논란 없이는 다스릴 수 없던 이름 없는 한 모퉁이의 주인에 불과했던 자가, 대지의 끝에 도달하여 자신의 세계를 지나 돌아가려 할 때에 슬퍼하고 있네.
Neminem pecunia divitem fecit, immo contra nulli non maiorem sui cupidinem incussit. Quaeris, quae sit huius rei causa? Plus incipit habere posse, qui plus habet. Ad summam, quem voles mihi ex his, quorum nomina cum Crasso Licinoque numerantur, in medium licet protrahas. Adferat censum, et quicquid habet et quicquid sperat, simul computet; iste, si mihi credis, pauper est, si tibi, potest esse.2
돈이 누군가를 부유하게 만든 적은 없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은 모두에게 자신에 대한 더 큰 갈망을 불어넣었네. 자네는 이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가? 더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질 수 있기 시작한다네. 요컨대, 크라수스와 리키누스와 함께 그 이름이 꼽히는 자들 중에서 자네가 원하는 누구든 내 앞에 끌어내어 보아도 좋네. 그에게 재산액을 제시하게 하고, 가진 것과 바라는 것을 모두 함께 계산해 보게나. 내 말을 믿는다면 그는 가난한 자이고, 자네 말을 믿는다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네.
At hic, qui se ad id, quod exigit natura, composuit, non tantum extra sensum est paupertatis, sed extra metum. Sed ut scias, quam difficile sit res suas ad naturalem modum coartare, hic ipse, quem circa dicimus, quem tu vocas pauperem, habet aliquid et supervacui.
하지만 자연이 요구하는 바에 자신을 맞춘 이는 가난을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벗어나 있네. 하지만 자신의 소유를 자연스러운 한도로 좁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도록 덧붙이자면, 우리가 논하고 있으며 자네가 가난하다고 부르는 바로 이 사람조차도 무언가 여분의 것을 가지고 있네.
At excaecant populum et in se convertunt opes, si numerati multum ex aliqua domo effertur, si multum auri tecto quoque eius inlinitur, si familia aut corporibus electa aut spectabilis cultu est. Omnium istorum felicitas in publicum spectat; ille, quem nos et populo et fortunae subduximus, beatus introsum est.
하지만 어떤 집에서 많은 현찰이 실려 나오고, 지붕에까지 많은 금이 칠해져 있으며, 노예들이 엄선된 체격이거나 눈부신 복장을 하고 있다면, 부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려놓네. 그 모든 자들의 행복은 대중을 향해 열려 있네. 하지만 우리가 대중과 운명으로부터 건져낸 저 사람은 내면에서 행복하네.
Nam quod ad illos pertinet, apud quos falso divitiarum nomen invasit occupata paupertas, sic divitias habent, quomodo3 habere dicimur febrem, cum illa nos habeat. E contrario dicere solemus: febris illum tenet. Eodem modo dicendum est: divitiae illum tenent. Nihil ergo monuisse te malim quam hoc, quod nemo monetur satis, ut omnia naturalibus desideriis metiaris, quibus aut gratis satis fiat aut parvo; tantum miscere vitia desideriis noli.
마음이 사로잡힌 가난이 잘못해서 부라는 이름을 찬탈한 자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열병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을 때 우리가 열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부를 소유하고 있네. 이와 반대로 우리는 보통 ‘열병이 그를 붙들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똑같은 방식으로 ‘부가 그를 붙들고 있다’고 말해야 하네. 그러므로 나는 자네에게, 아무리 권해도 부족함이 없는 다음의 사실, 즉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측정하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권하고 싶지 않네. 자연스러운 욕망은 공짜로 혹은 적은 비용으로 충족되네. 다만 욕망에 악덕을 섞지 말게나.
Quaeris, quali mensa, quali argento, quam paribus ministeriis et levibus adferatur cibus? Nihil praeter cibum natura desiderat. "Num tibi, cum fauces urit sitis, aurea quaeris Pocula? Num esuriens fastidis omnia praeter Pavonem rhombumque?"
자네는 어떤 식탁에서, 어떤 은기에서, 얼마나 키가 고르고 날랜 시종들에 의해 음식이 날라져 와야 하는지 묻는가? 자연은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네. “목구멍이 갈증으로 타들어 갈 때, 자네는 황금 잔을 찾는가? 굶주렸을 때, 공작새와 넙치 외에는 모든 것을 싫어하는가?”
Ambitiosa non est fames, contenta desinere est; quo desinat, non nimis curat. Infelicis luxuriae ista tormenta sunt; quaerit, quemadmodum post saturitatem quoque esuriat, quemadmodum non impleat ventrem, sed farciat, quemadmodum sitim prima potione sedatam revocet. Egregie itaque Horatius negat ad sitim pertinere, quo poculo aqua aut quam eleganti manu ministretur. Nam si pertinere ad te iudicas, quam crinitus puer et quam perlucidum tibi poculum porrigat, non sitis.
굶주림은 허영심이 없으며, 해소되는 것으로 만족하네. 어떻게 해소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네. 이것들은 불행한 사치의 고통이네. 사치는 배가 부른 후에도 어떻게 굶주릴 수 있을지, 위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쑤셔 넣을지, 첫 모금으로 가라앉은 갈증을 어떻게 다시 불러일으킬지 구하네. 그러므로 물이 어떤 잔에 담겨 나오는지, 혹은 얼마나 우아한 손에 의해 대접되는지는 갈증과 무관하다고 호라티우스가 부정하는 것은 지극히 훌륭하네. 왜냐하면 얼마나 머리가 긴 미소년이, 얼마나 투명한 잔을 자네에게 내미는지가 자네와 상관있다고 판단한다면, 자네는 목이 마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네.
Inter reliqua hoc nobis praestitit natura praecipuum, quod necessitati fastidium excussit. Recipiunt supervacua dilectum: hoc parum decens, illud parum laudatum, oculos hoc meos laedit. Id actum est ab illo mundi conditore, qui nobis vivendi iura discripsit, ut salvi essemus, non ut delicati. Ad salutem omnia parata sunt et in promptu, deliciis omnia misere ac sollicite conparantur.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특히 뛰어난 은혜는, 필연성으로부터 싫증을 털어내 준 것이라네. 불필요한 것들이야말로 선택을 받아들이네. ‘이것은 어울리지 않고, 저것은 칭찬받지 못하며, 이것은 내 눈을 상하게 한다’고 말이네. 우리에게 삶의 법을 배정해 주신 저 세계의 창조주가 행하신 일은, 우리가 안전하기 위함이지, 사치스럽게 살기 위함이 아니었네.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고 손닿는 곳에 있네. 사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이 비참하고 노심초사하며 장만되네.
Utamur ergo hoc naturae beneficio inter magna numerando et cogitemus nullo nomine melius illam meruisse de nobis, quam quia quicquid ex necessitate desideratur, sine fastidio sumitur. Vale.
그러므로 거대한 것들 사이에 꼽혀야 할 자연의 이 혜택을 이용하도록 하세. 그리고 필연성에 의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아무런 가림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점보다, 자연이 우리에게 더 좋게 은혜를 베푼 대목은 없다고 생각하세. 잘 있게나.
- 119.8Inventus est qui concupisceret
관계대명사 qui가 이끄는 접속법 미완료 concupisceret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그러한 성질을 가진 자'를 나타내는 특징의 관계절(relative clause of characteristic)을 형성한다. 주절의 주어(is)는 생략되어 있으며, '모든 것을 다 가진 후에도 무언가를 갈망하는 자가 발견되었다'로 해석된다.
- 119.9potest esse
생략의 보완. 문맥상 si tibi [credis], [pauper] potest esse('자네 기준을 믿는다면, 그는 가난한 자가 될 수 있네')로 pauper를 보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앞 문장의 '가진 것과 바라는 것을 모두 합산하라'는 구절에 기초하여, 아무리 부유해도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한 주관적 혹은 잠재적으로 '가난한 자(pauper)'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혹은 dives를 보완하여 '자네 기준이라면 (세상 기준에서) 부유할 수 있네'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직전의 pauper est와의 대비를 고려할 때 pauper를 보완하는 것이 일관된다.
- 119.12sic divitias habent, quomodo
상관 표현 sic... quomodo('~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부를 소유하다')를 사용한 비유적 표현. 뒤따르는 cum절(cum... habeat)은 접속법을 동반하여 '열병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을 때'라는 상황적 조건이나 '열병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양보를 나타낸다. 인간이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부가 인간을 소유(지배)하고 있는 병적인 상태의 전도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